풍곡선생의 여러 가지 작품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대담한 필선과
과감한 생략이다. ‘배암 나오라’는 작품도 40호크기의 화면에 술잔을 들고 있는 개구리 한마리가 전부이다. 그러나 화면이 가득할
뿐 아니라 가감(加減)이 필요 없는 구도에 신선한 감을 주며, 작가의 역량이 충분히 표출된 작품이다. 선생은 산수화를 제작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고 채색이 강열하다. 구도와 기법이 독특하다. 따라서 작품이 미래지향적일 뿐 아니라 현대감각을 느끼게 하는 신선한 걸작들이
많다.
‘배암 나오라’는 풍곡선생의 창의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작품이다. 평소에 술을 좋아하시던 선생은 대취하면 무서운 것이 없는 호탕함을
보였다. 풍곡선생의 회화관(繪畵觀)은 탈속과 창작정신이다. 탈속하기 위해서는 술을 마시고 고승대덕들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심외무법(心外無法)을
주장하시곤 하셨다.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가 어언 10년이 지나 갔다. 훌륭한 예술작품을 제작하기위해서 심외무법이라는 평상심을 늘 잊지 않으셨다.
하심(下心)으로 자기를 다스리며 검소한 모범을 보이시던 선생님, 선생님의 그 높으신 예술정신을 본받지 못하고 속세에 물들어 안주(安住)하는
저의 못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작가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는 쌀과 연탄만 있으면 되는 것이야” 하시던 그 말씀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25년이 지난 양복과 구멍이 숭숭한 구두를 신으시고도 마음에 부자로 여기시며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시던 선생님, 형제봉(兄弟峰)을
등산하실 때 산중턱에서 산을 경배(敬拜)하시며 “사람은 산을 존경하고 가까이해야 산에서 얻는 것이 많을 것이야, 그림도 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산수화이며, 화가는 산이 매우 중요한 소재라는 것을 잊지 말이야 한다.” 산과 화가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는 말씀을
하시며 등산길에 더욱 흥미를 가지도록 유도 하셨다.
나의 화실에 들려서 “청계 있는가?” 하시며 매주 찾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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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帆 68 x 69.5cm 1982(개인 소장)
유머와 해학이 넘치시고 박장대소 하시는 모습은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즐거움을 주셨다. 선생님은 매일 장주하시며 호방한 인생을
즐기고 남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다. 2차, 3차, 술이 거나해지면 으레 베틀노래를 부르시고 젓가락 장단을 치며
흥겹게 노시면서 만사를 잊고 반선(半仙)의 경지에 이르셨다. 선생님은 화가이자 도사(道士)였다. 자기만의 신념과 철학을 가지고
주위의 유혹과 시류에 현혹됨이 없이 오직 정도만을 추구하시며 후회 없이 사셨다. 저는 아직도 세속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끝으로 선생님의 극락왕생을 진심으로 기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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