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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논단

박선규 - 그림의 현대적 담론

청계에세이

양태석 - 성곡 성제휴의 일화

문화탐방

김제영 글 - 태안 예총 연귿무대의 설치미술-창의 의미

2008년 12월호 > 특별기획 > 미술논단 > 박선규 - 그림의 현대적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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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논단/ 그림의 현대적 담론

그림의 현대적 담론

Park, Sun Kyu

글 : 박선규 / 철학박사

• 원광대학교 대학원 ( 미술학 석사 ), • 대만 문화대학교 철학연구소 ( 문학석사 , 미학전공 ),
• 대만 동해대학교 철학연구소 ( 문학박사 , 미학전공 )
• 전 ) 중등학교 교직 경력 13 년 , 대학 및 대학원 경력 15 년 , 대만 동해대학교 겸임교수 2 년
• 현 ) 사단법인 한국미술창작협회 이사장 , 의재정통유화연구원 지도교수
• 논문 : 易學與樂記中美學原理探究 ( 중국 문화월간 ), 藝術論 ( 중국 문화월간 ),
藝術與創造定律 ( 중국 대만성 교육청 문화논문집 ), 예술과감정 ( 한국 정신문화원 계간 논문집 ) 외
美學 . 예술철학 . 조형론 . 기교론 . 평론 . 감상에 관한 논문 다수
• 저서 : “繪畵思想與造形理論” ( 中文 ) “道思想과 繪畵世界” “美學이란 (1) ” “사색의 모델”
“이 시대를 바르게 살아가는 길” “현대미술도 예술인가”, “예술과 창작” “예술이냐 외설이냐”
“산수화와 그정신” “산수화의 조경이론” “문부와 그 미학” “공자는 안 죽어”,
“석도는 그림을 이렇게 그리라 하였다” “멍청한 심사와 응모작품” “제멋대로 ( 隨意 ) ”
“미학이란 (2) “ ”람상 1 “ ”람상 2 “ ”람상 3 “ 등 19 권
• 작품활동 : 유화 . 수채화 개인전 11 회 단체전 다수 출품 , 유화 50 인 초대전 출품 ,
아시아수채화연맹전 출품 , 맥시코 수채화비엔날레 출품 , 한국수채화협회전 출품 ,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
2001 년 제 26 회 한국수채화협회전 출품 , Fine Art Communication 협회 일본 동경전 출품
• 수상경력 : 교육공로상 3 회 수상 , 공모전 유화부문 3 회 수상 , 서예부문 2 회 수상

차 례

265. 묘사와 변화
266. 묘사와 표현
267. 변화와 불변
268. 비상(飛翔)

269. 화결체청(畵潔體淸)
270. 무소불관(無所不貫)적인 법
271. 무아(無我)
272. 화직이현(畵直而顯)

273. 화부이려(畵富而麗)
274. 화간이오(畵簡而奧)
275. 문멸기질(文滅其質)
276. 함문포질(含文抱質)

277. 뇌롱백태(牢籠百態)
278. 필력간이건(筆力簡而健)

265. 묘사와 변화

『문심조룡(文心雕龍)』에 “모든 예술가들이 뛰어보았자 결국 육경의 범위 안에서 맴돈다(百家騰躍, 終入環內).” 하였다. 앞에서 말했지만 예술 활동의 모든 것도 육경(六經)에서 빠짐없이 논하였다.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도록 가히 철저하게 피력해 놓았기 때문에 경서(經書)의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묘사와 변화의 응용방법도 마찬가지이다.

『좌씨춘추(左氏春秋)』에 묘사와 변화의 응용 방법으로 “질서가 없도록 어지러운 것은 가닥을 잡아 정리를 하라. 너무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외로운 것은 풍요롭게 보충하라. 목판처럼 아무런 의미 없이 버려져 있는 것은 죽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는 생명을 주입시켜라. 강직하고 경직된 것에는 부드럽고 순하며 예쁘게 하라. 세속적인 것은 우아하게 하라. 고목처럼 까칠한 것에는 살을 찌우라(紛者整之, 孤者輔之, 板者活之, 直者婉之, 俗者雅之, 枯者月臾之).” 하였다. 다양한 표현요소들을 질서가 없도록 화면에 배치하면 표현하려는 이미지가 산만해 진다. 이미지의 명료성을 위하여 표현요소들을 정리하는 것 이것이 분자정지(紛者整之)이다.

마티스는 속칭 단순화의 귀재라 한다. 그러나 너무나 단순화했기 때문에 구성적인 의미 이 외에 어떤 회화적인 메시지가 없다. 그래서 마티스도 실패한 화가라고 혹자는 평한다. 이처럼 단순화가 지나치면 표현하려는 이미지의 완정성(完整性)을 기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면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하여 바위틈에 한 송이의 꽃을 그리려는 그러한 것은 강인한 생명력의 표현보다는 외로움의 표현으로 그 이미지가 기우러진다. 차라리 무성하게 헝크러진 잡초사이에서 도도하게 피어나는 한 송이 꽃에 강한 생명력을 부여하려는 시도만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외로움을 피하라는 것이 고자보지(孤者輔之)이다.

목재는 그대로 방치해 두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을 이용하여 가구도 만들고 집도 짓고 다양하게 활용됨으로서 비로소 목재의 가치가 발휘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에 있어서도 형태나 색상들이 그냥 목재처럼 화폭에 방치해 둔 것과 같이 나열하여 채색되어 있다면 형태와 색상을 활용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들이 무엇인가를 표현해 주고 마치 하찮은 목재가 고급 가구로 변신하듯이 제2의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때 활력을 가진 이미지로 변신되어 형태와 색채가 최상의 가치발휘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판자활지(板者活之)이다.

모든 예술에서 직선적인 것은 금기사항으로 되어있다. 사실, 대화에서 직언을 피하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직언은 명료함이 있을지 모르지만 명료한 만큼 듣는 사람에게 주는 이미지도 강하여 부드럽게 소통될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모가 나는 표현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림에서도 이와 같이 직선적인 형태를 피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톱니처럼 날카로운 형상이나 창끝처럼 뾰족한 형태 또는 앙상한 선 같은 것은 경직되고 강경하여 조화를 이룰 여지가 희박하다. 새로운 생명의 출현이나 희망은 언제나 부드러운 것에 있다. 그래서 곡선적인 형상으로 날카로움을 마모하여 정서를 평화롭고 한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직자완지(直者婉之)이다.
대중예술은 주제의 시사성 자체가 저속하다. 활력 있는 사회적 기능보다는 퇴폐적인 선전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중예술을 저속문화로 분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에 대하여 공헌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는 정서적 스팩트럼이라는 점이다.
이에 반하여 순수예술은 최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의지표현, 능숙함이나 노련함의 표현으로서 인내와 진취적 의지표명, 수려하고 우아함의 표현으로서 최고의 아름다운 삶의 경지를 시사(示唆)하는 점, 완벽함의 우아함으로 최상의 문화적 삶을 제시하는 것, 이 모두를 간단히 우아하게 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이 세속적인 것을 우아하게 하라는 속자아지(俗者雅之)의 의미이다.

예술작품은 변화의 다양함이 이미지를 풍부하게 하고 아울러 소재를 또한 다양하게 흡수 활용하는 능력을 남김없이 발휘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만약 변화가 너무 단순하면 첫째, 볼품이 없다. 둘째, 빈곤해 보인다는 결함이 있다.
다른 관점에서 말하면 채색과정에서 어떤 색을 어떻게 혼합하였는가? 이것이 그림에 물기가 함초롬히 젖어있는 그러한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 물기가 없는 색채는 이미지의 생명력을 저하시킨다.

예술 작품에서 이러한 점을 앙상한 고목처럼 고갈되어 있다고 말한다. 연록의 입들이 무성할 때 그 나무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살 오른 짐승이 볼품이 있다. 말라버린 강보다도 물이 도도히 흐르는 강이 훨씬 보기 좋다. 이것이 곧 고자유지(枯者月臾之)이다.

266. 묘사와 표현
지난 호에서 육경(六經)에 대하여 말한바 있었는데 육경(六經)이 주로 논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말하면 예기(禮記)는 생활하기 위하여 행하는 행동을 제재하는 것, 즉 질서를 지키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예이절인-禮以節人). 질서는 개개인의 기거활동 및 식생활의 질서로부터 비롯하여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질서, 일의 순서에 따른 것 등등 모두가 이에 포함된다.

악기(樂記)는 자연 또는 대인 관계에 있어서 서로간의 조화에 대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악이발화-樂以發和). 최상의 조화는 예를 들면 가야금을 연주할 때 그 연주하는 음을 듣고 뭇 짐승이 모여 춤을 덩실덩실 추는 천락(天樂)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서경(書經)은 사리에 대한 것을 피력해 놓았다(서이도사-書以道事). 그 일의 해결은 그 일 자체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쉽게 풀린다. 또는 그 일이 생기게 된 근본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의 사례 같은 을 논하였다.

시경(詩經)은 자연사물의 정취와 인간의 정서가 하나로 되는 것에 대한 것을 기록한 시(詩)로서 그 모범적인 것을 예시한 것이다(시이달의-詩以達意).

주역(周易)은 만물이 생성 변화하는 것에 대한 것을 근본적으로 탐색한 것이다(역이도화-易以道化).

춘추(春秋)는 의리적인 것을 논하였다(춘추이도의-春秋以道義).
육경(六經)에서 말하는 그러한 내용은 다른 예술은 물론 그림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사물의 예(禮)로서 질서적인 것에 대한 확실한 이해, 사물이 서로 다른 것끼리 조화를 이루는 현상에 대한 작가로서 개성 있는 감각, 사물의 형성과정에 필요한 필수조건과 충족조건의 이해, 제2의 어떤 것을 탄생하는 구성 원리의 인식, 사물의 의(義)로서 확실한 구별 등등, 이 모두는 예술 작품에서 필요불가결한 것들이다. 따라서 육경(六經)에서 피력하고 있는 내용들은 곧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보기 좋은 사례이자 원리이기 때문에 이것을 근본으로 하는 회화의 조형적 이론의 출현은 모두 여기로부터이다.

『후한서(後漢書)』에 “사약사상(辭約事詳).” 이라 하였다. 이것은 좌씨춘추(左氏春秋)에 “그 말은 간단하나 중요한 점을, 그 일은 상세하나 빠짐없이 넓게(기언간이요-其言簡而要,기사상이박-其事詳而博).” 라는 것에 근거를 둔 말이다. 즉 “수식하는 말은 요약해서, 그러나 일에 대한 것은 빠짐없이 자상하게” 하라는 것은 어떤 사실을 기록할 때 기록하는 언어는 적게 하면서도 마땅히 기록되어야 할 것은 충분히 기록되게 하라는 『신당서(新唐書)』의 “문성사증(文省事增)”과 같은 말이다.

예술 작품으로 말하면 이미지 표현을 위하여 동원된 표현요소들은 간단하게, 그러나 이미지는 충분히 표현되게 하라는 것이다. 사실, 좋지 않는 그림일수록 다양한 표현요소들을 동원한다. 이에 반해 표현된 이미지는 불분명하거나 천박스럽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든 아름다움이 겸하여 잘 나타나게 마음대로 하는 것(중미겸천-衆美兼擅)이 표현요소들의 활용능력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사가(史家)들의 어려운 점은
①.번잡스럽고 정리가 안 된 것(번이불정-煩而不整)
②.속되고 전아하지 못한 것(석이불전-俗而不典)
③.기록한 것이 사실과 다르게 된 것(서불실록-書不實錄)
④.상벌이 적중하지 못한 것(상벌불중-賞罰不中)

⑤.수식하는 글들이 그 본질을 이기지 못한 것(문불승질-文不勝質) 등 다섯 가지이다.
예술 작품도 이 다섯 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면 역시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위의 내용에 따라 그림에 접목시켜 말하면 즉
①.표현요소들의 활용이 번잡하고 이미지 표현을 위한 가닥이 잡히지 않는 것
②.대중적인 것으로 전아한 아름다움이 결여된 것
③.필수조건과 충족조건이 이미지와 관계없는 것
④.주제와 부제의 조화현상이 적절하지 못한 것
⑤.속태를 벗지 못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변화발전해가는 모든 것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느릿느릿하나 구석구석 다하지 못함이 없도록, 여한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처럼 그림에 있어서도 표현요소의 활용이나 구성 자체가 비록 성글더라도 표현하려는 이미지를 충분히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다. 노자(老子)는 “도라는 그물이 성글지만 자연사물이나 인간의 모든 것이 단 하나라도 그 성근 그물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없다(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실-疏而不失).” 하였다. 예술작품의 창작에 있어서 이미지의 유실로 인하여 무엇을 표현하려는 것인가? 불분명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이와 같다. 이것을 적중(的中)의 의미로서 한 마디로 “완(緩)”이라 한다. 완(緩)의 의미는 예를 들면 교만한 자긍심도 없고, 천방지축 초조 하는 것도 없으며, 해이되거나 지나치게 엄격한 것도 없는 상태이다. 모든 것들이 상황에 적중하도록 조화를 이룬 최상의 아름다운 현상이다. 위에서 말한 그 다섯 가지는 결국 이 완(緩)을 얻고자 하는 의미이다.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는 먼저 마땅히 앞에서 말한 그러한 것들을 충분히 알고 그 후에 표현하려는 이미지에 대한 기상(氣象)을 알아야 한다(당선의법-當先意法, 이후기상-而後氣象)는 것이다. “『곡양(穀梁)』에서는 간단명료함을 본받고, 『공양(公羊)』에서는 일의 실상을 얻어야 한다(於穀梁師其簡, 於公羊得其).“는 말이 있다. ”그림에 대하여 올바른 인식을 해야 한다.

박선규 作 <북한산 백운대 가는 길> 90.9 x 72.7cm

요산요수(樂山樂水)라는 말이 있다. 인자(仁子)는 요산(樂山), 지자(知者)는 요수(樂水)라 했다. 즉 자애롭고 덕스로운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롭고 어진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산도 다섯가지 덕이 있고, 물도 다섯가지 지혜가 있다. 산의 다섯가지 덕은 정(靜), 순(順), 풍(風), 습(濕), 열 (熱)이다.
이러한 덕을 가진 산이기에 그 산에서 어떤 동물이 어떤짓을 하든지 포용한다.
가령 굴을 판다든가, 옥석을 캐낸다든가, 약초를 채취한다던가, 하여간 산에 와서 무슨 짓을 하든지 포용하며 하고자 하는것에 따를 뿐이라는 미덕을 가지고 있는것이다.
등산객의 발길에 모래알이 가루가 되도록 부서졌지만 산은 말이 없다. 수용할 뿐이다.
이러한 산의 아름다움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시도하는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그림으로서 마땅히 구비되어야 하는 것이 빈곤하여 외롭게 되는 것도 그림이 아니며, 근본이 없이 들떠서 화려한 것도 또한 그림이 아니다(畵字要善認, 當知孤質非畵, 浮艶亦非畵).” 하였다. “그림은 그렇게 그리지 않을 수 없는 당위성으로부터 붓질을 해야 한다(文貴於所以然處着筆).” 는 말이 있다. 그 당위성이란 이미지의 밀(密)과 소재활용의 소(疏)이다. 구도법이나 붓질의 활용에 대한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은 말이다.

267. 변화와 불변
유재희(劉載熙)는 “백번을 변해도 그 근본을 떠나지 않는다(百變而不離其宗).” 는 말을 하였다. 사리를 미진한 부분이 없을 때까지 분석하고 그것을 활용할 때 최후의 경지까지 도달하도록 하는데 있어서 다함이 없도록 하는 것도 그림으로서 마땅히 존재하는 그 근본을 떠나지 않는 것이 된다. 마치 꾸르베가 저임금의 노동의 힘겨움을 표현하여 사회적 비난을 격앙시킴으로서 사회주의회화로서 열열한 환영을 받았던 <석공>이라는 그림은 꾸르베의 예술이념인 사실주의를 떠나지 않는 양식의 근본을 지키는 것과 같다. 체(體)와 용(用)을 예로 하여 여러 차례 말하였지만 위에서 말한 종(宗)은 바로 그 체(體)적인 것이다.

종(宗)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서경(書經)』에 “종은 존이다(宗, 尊也).” 하였다. 가장 높은 것으로서 네 계절, 한서(寒暑), 해, 달, 별, 수한(水旱) 등 여섯 가지가 있다 하였다. 이 여섯 가지는 생명체의 생성과 변화를 주재하는 신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가장 존귀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종(宗)이라 한다는 것이다. 『문선(文選)』에서도 “종은 존이다(宗, 尊也).” 하였다.

『광아(廣雅)』에서는 “종은 모든 것의 근본이다(宗, 本也).”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본(本)은 어떤 것이 생기게 되는 근본적인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어떤 것이 비로소 시작되는 미미한 한 점의 위치로부터 출발하는 그러한 것이다.

『국어(國語)』에서는 “종은 예의 근본이다(宗,禮之本也).” 하였다. 예(禮)는 예의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질서를 뜻한다. 질서는 내적 질서와 외적 질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적 질서는 어떠한 통제를 받지 않고도 자연처럼 스스로 사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적 질서는 법적 통제 또는 사회생활 규범 같은 것의 통제를 받아서 자유롭지 못하나 부득이 지켜야 하는 질서 생활이다. 이러한 두 가지 것의 질서로서 생활규범으로 해야 하는 예 자체가 종(宗)이라 한다는 것이다.

『여씨춘추(呂氏春秋)』에서는 “도를 종으로 한다(以道爲宗). 즉 근본으로 한다.”는 것이다. 종(宗)은 곧 도(道)라는 의미이다.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누차 말했지만 이(理), 기(氣), 상(象), 수(數)의 네 가지 것을 그 자체 안에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 사물이 다른 사물과 조화를 이루는 현상이나 또는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은 사실 너무도 많다. 그러므로 한 사물을 소재로 선택하여도 그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그 많은 것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여 표현내용으로 해도 되리만큼 충분한 표현내용이 있다. 다만 무엇을 종(宗)으로 할 것이며 무엇을 표현내용으로 할 것인가? 그 선택의 자유는 개개인에게 있다. 어떠한 사물도 불변적인 것이 있고 항상 변화하는 것이 있다. 그 불변하는 것을 종(宗)을 삼고 변화하는 것들을 표현내용으로 하는 것 이 자체가 또한 도(道)이다.

모든 예술에 있어서 불변과 변화의 이론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268. 비상(飛翔)
유재희(劉載熙)는 “그림으로서 가장 신묘한 경지에 도달한 것은 자연과 더불어 비상할 수 있는 것이다(畵之神妙, 莫過於飛).” 하였다. “나르는 갈매기가 바다를 희롱하고, 확이 하늘과 더불어 춤을 춘다(飛鴻戱海, 舞鶴遊天).”는 시구(詩句)가 있다. 나른다는 것은 어떠한 단서도 없이 오고, 어떠한 단서도 없이 가는 것(無端而來, 無端而去)이다. 사물이 생기게 되는 그 시발점까지 그것에 대한 모든 것을 체험해야 비로소 비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신(神)과 같다고 할 수 있는 경지까지 진입했을 때 개개인의 감정을 떠난 사물 자체로부터 감각한 것이 표현내용이 되고, 위에서 말한 그 종(宗)을 바탕으로 하여 한 점의 작품을 창작했을 때 비상할 시공(時空)이 보이는 것이다.

그는 “화가의 예술에 대한 개념 혹은 그 정신이 속세(俗世) 밖에 있지 않으면 그리는 그림마다 괴상한 것이 된다(意出塵外, 怪生筆端).” 하였다. 세속적인 생각으로 화가로서 삶이 여기에 머물러 있다면 비상은커녕 좋은 작품의 창작이 불가능하다. 그림을 그리는 자체가 하나의 자연적인 행위로서 어떠한 통제를 느끼지 않는 가운데 마치 바람이 호수 위를 스치고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잔잔한 파도가 생겨 환연(煥然)히 금빛 찬란한 문양을 이루어 내듯이 아주 낙천적이고 자유스럽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때 비로소 화가는 자연과 더불어, 자연과 하나가 되어 비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269. 화결체청(畵潔體淸)
화가는 그리고자 했던 이미지 표현을 위하여 그이미지에 대한 느낌을 먼저 가지고 그것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소재로부터 느낀 이미지에 대한 정감이 완전히 표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재에 대한 정감이 극치에 도달하면 그림은 저절로 생긴다(情至畵生).” 하였다. 그림이란 본래 본질적인 체(體)를 구비하지 않는 것이 없다(畵無體不備)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의 체(體)에 해당되는 것은 소재로부터 화가가 느낀 정취로서 이미지 자체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가 표현하려고 했던 만큼 표현되지 못하면 그림은 그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리게 되어 체(體)의 형성이 불가능해지고 아울러 이미지의 투명성이 떨어진다.
그림 안에 체(體)가 있도록 하려면 그림 자체가 깨끗해야 하고 맑고 투명해야 한다. 깨끗하다는 것은 첫째,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표현요소의 응용에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다. 둘째, 이미지 표현에 아주 적절한 표현요소의 선택이다. 맑고 투명하다는 것은 첫째, 시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둘째, 거울이 사물을 비춰주듯이 아주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내 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화결(畵潔)은 묘사에 관계되는 것이고, 체청(體淸)은 표현에 관계되는 것이다. 묘사를 어떻게 했을 때 표현하려는 이미지가 명료하고 광휘성이 높도록 표현될 것인가? 이의 관건은 결(潔)과 청(淸)에 있다는 것이다.

270. 무소불관(無所不貫)적인 법
“그림을 그릴 때 법에 의하여 시작하고, 법에 의하여 마친다. 법에 의하여 이론적인 것을 변론하고, 법에 의하여 착종현상의 조화를 이루는 것과 서로 다른 것을 논한다(經以始事, 經以終義, 經以辯理, 錯經以合異.” 하였다. 이것은 곧 자연 사물이 구비하고 있는 현상으로서 자연적 법칙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러한 법칙이 있기 때문에 자연사물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한다. 그림도 이와 같이 법에 의하여 그리기 시작하고, 그림을 다 그린 후에는 그것의 당위성에 대한 식별을 의(義)에 의하며, 이미지 표현의 불명확성을 이론적으로 논하고, 서로 다른 표현요소들의 합일점과 상의한 점을 자연사물의 착종현상과 같도록 할 때 좋은 그림이 창작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림을 그릴 때 한 폭의 그림에는 법이 구비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태사공(太史公-춘추시대의 석학)의 문장은 정신과 기혈이 갖추어지지 않는 곳이 없다(太史公文, 精神氣血, 無所不具).” 는 것과 같다. 앞에서 말한 소(疎)와 밀(密)은 묘사와 표현 어느 것이나 법에 의한 정신과 기혈의 소통이 대하처럼 도도히 흐르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경지에 이를 때 그림을 그리는 법은 무소불관(無所不貫)이다.

271. 무아(無我)
유희재(劉熙載)의 무아(無我)에 대한 관점을 보면 “모든 예술의 창작 비법은 자아를 망각하고 만물을 자아로 하는데 있다(秘要則在於無我,而萬物爲我).” 고 말한 것처럼 개인을 자아로 하지 말고 만물을 자아로 하라는 것이다. 만물을 자아로 하는 예를 보면 장강(長江)이나 대하(大河)도 한 시냇물이나 계곡과 같다는 것이고, 공부한바가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으며, 사물의 정서가 다름을 유별로 정리하는 일 같은 것이라 하였다. 파란 하늘에 떠가는 구름은 그 모양이 운무 속에서 출현하는 용 같고, 천마(天馬)가 힘차게 달리는 모양 같으며, 선녀가 비상하는 것과도 같은 형상들의 출몰이 있는가 하면 사라지기도 한다. 자연의 변화 무쌍한 그 자체를 직시하고 이에 의한 창작을 하라는 것이다.

어떠한 예술도 이러한 자연적인 현상의 질서적인 것, 그러한 현상이 생기게 하는 자연적인 기틀, 사물들의 각양각색의 성정, 생성 변화하는 의취 그것을 자신으로 삼아 감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창작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만물을 나로 하라는 것으로 만물위아(萬物爲我)이다.

272. 화직이현(畵直而顯)
“맹자(孟子)는 『시경(詩經)』, 『서경(書經)』을 탐독하고, 그의 문장은 직언으로 표현하려는 내용을 서술하였다(孟子好詩書,文直而顯).” 한다. 직(直)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바르게 보는 것이다(正見也).” 하였다. 『집전(集傳)』에서는 “역시 마땅한 것이다.(直猶宜也).” 하였다. 『옥편(玉篇)』에서는 “구부러지지 않는 것이다(直不曲也).” 하였다. 『시경(詩經』에서는 “화살과 같은 것이다(其直如矢也).” 하였다. 『예기(禮記)』에서는 “ 먹줄은 적중함을 얻는다와 같은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直謂繩墨得中也).” 하였고 “간사하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直謂不邪也).” 하였다.『순자(荀子)에서는 “삼 가운데서 자라는 쑥은 붙잡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蓬生麻中不扶自直).”의 곧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옳은 것은 옳고 잘 못된 것은 잘 못된 것으로 직시하는 것이 직의 의미이다(是謂是, 非謂非曰直).” 하였다. 『서경(書經)』에서는 “사사로움이 없고 정직한 것을 말한다(無私正直也).” 하였다. 『한비자(韓非子)』에서는 “의리는 반드시 바르고 마음은 편파적이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所謂直者, 義必公正, 心必不偏黨也).” 하였다. 『후한서(後漢書)』에서는 “굽어지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直謂不曲撓也).” 하였다. 『태현경(太玄經)』에서는 동방의 의미이고 봄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직 상이 생기지 않는 현상의 소박함과 같은 것을 말한다(直東方也, 春也, 質而未有文也).“ 하였다. 이 외에도 정직함, 중립을 지키며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 수평을 유지하는 것, 당연한 것, 질의 소박함, 가장 중요한 일, 통하는 것, 지름길 등등의 의미가 있다. 직(直)의 이러한 의미를 종합해 보면 결국 그림이란 어떠한 것을 이미지로 하여 표현해야 되는가? 잘 알 수 있다.

반 낭만주의이고 반 미학적인 표현활동의 대중적인 아방가르드의 유행을 추종하고 감정적인 심미안으로 타락하여 편견에 사로잡힌 그러한 표현내용은 결코 바람직한 이미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태현경(太玄經)』에서 말한 직(直)의 의미로만 보더라도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소박한 현상의 현현(顯現)이야말로 모든 문화 예술이 표현해야 하는 최상의 이미지이다.

273. 화부이려(畵富而麗)
그림은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하여 충분한 표현요소를 응용함으로서 풍성한 이미지의 표현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富)는 『예기(禮記)』에 “완전히 구비된 것을 이르는 말이다(富之言備也).” 하였다. 『장자(莊子)』에서는 “만물이 서로 다름이 있는 데 이것을 부라 한다(有萬不同之謂富).” 하였다. 『설문(說文)』에서는 “땅의 두께처럼 두터운 것을 말한다(富, 厚也).” 하였다. 물론 풍부하다, 번성한다, 재산의 부유함 등의 의미도 있지만 맑은 밤하늘에 별들이 초롱초롱, 아름답게, 풍부하게, 매달려(麗) 있듯이 예술 작품에는 표현하려는 이미지가 그렇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위대성은 가장 부유한 사람도 결국 가장 가난한 사람이 사서 마시는 그러한 음료수를 마신다는 것이다. 즉, 부유하다 하여 색다른 음료수를 마시지 못하고 같은 것을 마신다는 대중적인 전통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적인 전통은 건달이 길 모퉁이에서 음료수 캔에 빨대를 꽂아 빨아대는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팝아트가 “나는 소비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소비사회의 풍조를 간명하게 요약해 주는 표어와 같은 그러한 이미지 표현을 위한 하나의 양식을 창안 했지만 만물이 서로 다름이 있음을, 어떠한 것도 그것 나름대로 그러한 양상을 띠고 있기에 충분한 조건, 풍부한 내용을 구비하고 있다는 것처럼 표현하지는 못했다. 마치 대중적 소비사회의 전통처럼 데카당스에 머무는 표현이 되고 말았다. 본 예문이 제시하는 바와 같은 풍부한 내용으로 표현하려는 이미지의 명료성을 높이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연순 作 <다완> 90.9 x 72.7cm

주역(周易)에 보면 "천복지대(天覆地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만물이 생성 변화하는 바탕의 형국을 말한 것이다.
즉 "하늘은 덮고, 땅은 이고"라는 형상적 시각에서 한 말이다.
예를 들면 책상의 천판은 하늘이 지구를 덮고 있는 이치이고, 책상 다리는 땅이 만물을 머리에 이고 있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결국 만물은 하늘과 땅의 이러한 형국 안에서 생성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어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
하지만 지구를 덮고 있는 공간안에서 만사만물이 생기고 자라며 변화하는 현상의 이미지는 표현이 가능 하지 않을까?
본 작품은 아주 단편적인 시각에서 엎어진 다완을 바로 뒤집으면 그 안에 어떤 것들이 쏟아져 나올까?
그 궁금증으로도 천복지대(天覆地戴)의 의미지를 느끼게 하려는 실험 작품이다.

274. 화간이오(畵簡而奧)
앞에도 이미 설명한 바 있는데 이 간(簡)의 출발은 주역(周易)의 간이(簡易)에서 비롯된 말이다. 즉, 만물은 어떠한 것도(사람도, 사람이 만든 생활필수품도)절대 불변하는 것이 있고, 반드시 변화하는 것이 있으며, 생성과 변화의 시초는 가장 간단하고 쉽다는 이치가 있다는 것이다. 간단하고 쉽다는 간이(簡易)는 예를 들면 달걀과 같다. 달걀은 흰자, 노른자, 그리고 힘줄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부화되면 부리도 되고 털도 되며 뼈도 생기고 껍질도 생기며 흰 닭도 되고 노랑 닭도 된다. 이처럼 형성될 것들이 달걀 겁 찔 안에 다만 노른자 흰자 힘줄로만 간단히 압축되어 있다. 이것을 간이(簡易)라 한다. 예술에서 간이(簡易)는 달걀처럼 간단한 표현요소로서 충분한 이미지의 표현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한 화폭에 많은 색채를 사용하지 않아도 소재가 띠고 있는 색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예문의 오(奧)는 『논어(論語)』에 “실내와 같은 안이다(奧內也).” 하였다. 『문선(文選)』에서는 “숨겨져 있는 곳이다(奧隱處也).” 하였다. 『좌씨춘추(左氏春秋)』에서는 “주요한 것이다(猶主要也).” 하였다. 『태현경(太玄經)』에서는 “비밀스러운 것이다(奧秘也).” 하였다. 밖으로 드러나야 할 것들이 안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 것을 말한다. 드러나는 것은 속되고 천박하다.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것은 신비롭다. 간이(簡易)에서 설명한 것처럼 어떠한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그 신비로움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부각시키는 것이 그림으로서 표현해야 하는 핵심적인 것이다.

위의 예문 세 가지는 화가뿐만 아니라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반드시 암기하고 자기 작품에 대하여 이 세 가지 것을 평가척도로 하여야 한다. 유희재(劉熙載)는 “예술가들의 병은 마치 성인이 된 것처럼 정좌하며 자기 작품에 대하여 만족하고 있다. 만약 성인의 경지를 얻었으면 표현하는 것들은 비록 서로 다르지만 그 경지가 하나라는 것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이 공부하는 예술가들이 귀중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다” 하였다. 또한 “표현의 소(疎)와 밀(密)이 의미하는 바 그 표현은 영원히 다할 수 없다.” 하였다. 앞에서 이미 설명하였지만 소(疎)와 밀(密)은 노자(老子)의 “도라는 그물이 성글지만 어떠한 것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도(道)라는 그물과 같은 성근 것이기는 하나 어떠한 이미지도 놓치지 않고 충분히 표현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역대 많은 예술가들의 좋은 작품들은 하나 같이 이 소(疎)와 밀(密)의 이치를 다 하였다는 것이다.

275. 문멸기질(文滅其質)
『논어(論語)』에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말이 있다. 문(文)은 수식한 것, 다듬어 만든 것, 문양, 상(像), 상(相), 상(象), 모양, 그림 등등의 의미가 있다. 질(質)은 어떠한 것도 만들지 않는 본래의 모습대로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직 조각하지 않는 석물이나 목재처럼 소박함 그대로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사람은 문질이 빈빈(반반하다, 상반하다)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인격을, 사람다운 인격을, 인간에 걸맞게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인격을 돋보이기 위하여 지나치게 꾸미면 인간의 본질에 맞지 않아서 오히려 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소박하면 또한 야해진다 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질적인 소박성이 수식하는 장시적인 것보다 우세하면 야하고, 그 반대이면 지나치게 화려해져 소박함을 잃는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하였다.

예술 작품에 접목하면 지나친 형식은 표현내용을 부실하게 하고, 내용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형식이 빈약하여 내용을 모두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내용과 형식이 상반(빈빈-彬彬)하게, 정확히 말하면 내용과 형식은 불가분의 것으로 정확히 알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예문의 문멸기질(文滅其質)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예술가들은 개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부족 혹은 곡해로 그 개성만을 강조하는 형식에 매달려 작품을 제작함으로 예술작품으로서 그 본질적인 것을 없애버리는 경향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276. 함문포질(含文抱質)
이것도 위의 문멸기질(文滅其質) 즉, 그림이 그림의 본질을 없애버리는 것은 안 된다든가, 혹은 화장을 하는 의의는 인간의 본래 순수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회사후소(繪事後素)와 같은 의미를 띠고 있다. “그림이란 묘사된 바가 있어야 하고, 그 묘사된 것에는 그림으로서 그 본질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함문포질(含文抱質)도 문질빈빈을 강조한 것이다.

그림이 그림으로서 올바른 이론을 띠고 있어야 비로소 실질적인 그림이 된다. 감각적인 재능은 있으나 숙련된 바가 없으면 함문포질(含文抱質)의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문심조룡(文心雕龍)』에 “감정은 이것저것 번잡하지만 정작 그것을 표현하려는 말들은 없다(情繁辭隱).” 는 것도 재능은 많으나 수련한 바가 없기(才多練少) 때문이다. 유협( )의 『신론(新論)』에 “혼자 서 있지만 외로운 그림자를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홀로 잠을 자지만 이불을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獨立不慙影, 獨寢不愧衾).” 는 것처럼 상황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도록 수련을 하지 않으면 함문포질(含文抱質)의 경지에 도달한 그림을 그리기 어려울 것이다.

277. 뇌롱백태(牢籠百態)
이 말은 산수(山水)를 그리고 인물을 그리지만 그 그림에는 백 가지 형태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뇌롱(牢籠)은 한데 묶어 놓았다는 뜻이다. 그림 안에 모든 자태들을 표현한 것이 마치 한데 묶어놓은 것과 같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환언하면 한 폭의 그림 안에는 마땅히 앞에서 말한 <간이(簡易)>와 같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림을 보면 태산을 보는 것 같고 대하를 보는 것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태산은 함축하고 있지 않는 것이 없다. 대하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이 품고 있는 그 모든 것을 단 한 폭의 그림에 뇌로(牢籠)되어 있도록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체(精體)의 무한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처럼 그림이라는 정성스러운 물체는 그러한 변화의 신기를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비밀은 그림을 하나의 정체(精體)가 되도록 그리는 것이다.

278. 필력간이건(筆力簡而健)
필력은 간단하고 강건해야 한다는 뜻이다.

건(健)의 형이상학적 의미는 주역(周易)의 건괘(乾卦)상전(象傳)에서 “하늘의 운행은 강건하다(天行健).”는 의미와 같다. 건(健)은 강건한 힘을 가지고 변화하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천체운행의 불변과 변화의 강력한 힘 같은 것을 뜻한다. 몸이 건강하다고 할 때도 이러한 의미로서 건강인데 인체의 유기적 조직의 어떠한 부분도 인체 자체의 건전함을 유지하기 위한 본질적인 것이 있다. 이것이 하나도 손상되지 않고 건강한 육체의 보존을 위하여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인체 조직의 움직임처럼 우주도 또한 모든 생명체도 그렇다는 것이다. 만약 천체의 운행이 불건전하다면 지구도 지구에서 서식하는 모든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다. 오직 천체의 운행이 건전함으로서 생명체는 천체운행의 공능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건(健)은 이러한 의미로서 모든 것의 건재함을 유지케 하는 천체 기능의 건(乾)이다.

이러한 건(健)은 그림을 그릴 때 그 필력이 또한 이러한 강건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력의 강건함이란 마치 천체의 운행과 같이 이미지 표현을 위하여 시종일관 불변하는 능력으로서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불필요한 붓질로 이미지를 흐리게 하는 것은 필력의 건강함을 상실한 것이다. 간단한 붓질로서 충분히 이미지를 표현을 했을 때 그 필력은 간단하고 강건하다 말할 수 있다.

사실, 그림을 보면 불필요한 붓질, 서툰 붓질, 정교하지 못한 붓질 등등이 있다. 이로 말미암아 그림은 처음 그리려고 했던 이미지는 표현되지 않고 지저분하고 너절한 표현에 머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곧 필력의 간(簡)과 건(健)의 진리를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물론 그림을 많이 그려보지 않으면 쉽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좋은 그림이란 성스럽고 진실하다. 감상자로 하여 아득히 먼 곳으로 빠지게 하여 무아지경의 그윽함을 맛보게 한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필력의 간단함과 강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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