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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6월호 > 작가 > 작가탐구 > 박행보 - 2008 관주시립미술관 올해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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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Doc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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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광주시립미술관 올해의 작가
박 행 보
2008. 5. 22 - 6. 29 광주시립미술관
2008년도 광주시립미술관(관장:박지택)이 올해의 작가로 한국화가 박행보
화백을 선정하고 5월22일부터 6월29일까지 많은 미술애호가들의 관심 속에 전시회를 갖고 있다. 금봉(金峰) 박행보(朴幸甫)
화백의 작품은 성실성과 정직함, 부단히 새로움을 갈망하는 예술가적 창조 정신이 넘쳐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50여년이 넘는 작가의 화력은 기운생동한 골법용필 등 독자적인 화풍을 심화시켜 정상의 위치를 굳히고 있다. 의재 허백련
선생의 제자로 남종화가 지니고 있는 운치와 멋을 담아내고 있는 그의 작품은 먹색의 농담변화로 자연의 생명감을 자신만의
필법으로 전개시켜나가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작 60여점이 선보이고 있다.
-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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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봉 박행보 화백의 초대전을 축하하며
김충렬 / 동양철학, 학술회 회원.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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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병석에 누워있는데 금봉(金峰) 박행보(朴幸甫) 화백의 초대전이
있으니 축사(祝辭)를 써달라는 정진백(鄭鎭伯)선생의 전화를 받았다.기뻤다. 평소보다는 무엇인가 마음 가는 것이 있어서
기쁘다기보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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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금봉(金峰)의 건강한 모습과 은중(隱重)한 태도 그리고 근래에
와서 자기의 그림 세계를 새롭게 열어가는 여러 가지 면면이 환상(幻想)처럼 지나갔다. 지난 해 11월 11일 뇌진탕으로
쓰러져 인공호흡으로 |
강변(江邊) 49 x 64cm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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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났다.1주일 동안이나 의식을 잃어 다 죽은 목숨이었다. 다행히도 의식을 되찾아
생사경(生死境)에서 살아나 꼭 한 달 만인 12월 12일 퇴원했다.
80을 바라보는 늙은 몸이라, 건강회복이 더디고 글을 쓸만한 사고력이나 문장 구상이 되지 않아 모든 원고청탁, 특히 축하서문 같은
것을 거절했는데 금봉의 화전(畵展)에 붙이는 글이라니 어찌 거절할 수가 있는가? 생각이나 문장이 옛날 같지 않아 남부끄럽다. 에오라지
주저 없이 생각나는 대로 써서 죽다 살아온 친구의 살아 있다는 인사에 대신할까 한다.
내가 금봉과 알게 된 것은 30여년, 난초를 좋아하고 연구하던 동국대 교수 황상주(黃尙周) 형의 소개로 직접 금봉 화실(畵室)을
찾아간 것이 시작이다. 그때 금봉은 꽤 많은 난 분을 기르고 있었다. 나는 난을 좋아는 하나 가까이 하기도 직접 기를 처지도 못되는
형편이라 거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금봉의 시(詩), 서(書), 화(畵)를 감상하는 데 넋을 잃었다. 동양화가 서양화풍에
밀리거나 변화해가고 한문을 배우지 않아 동양화에는 으레 따르는 화제(畵題)가 공백으로 있어 화의(畵意)를 감상하기가 어려워져가는
것을 아쉬워하던 터였다. |
호수가 있는 풍경 55 x 60cm 2003
만학천봉(萬壑千峰) 83 x 91cm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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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금봉의 그림에는 격조(格調)높고 화의를 암전(暗傳)하는 시(詩)와 화(畵)가
곁들여 있기 때문에 의아(疑訝)해서이다.
알고 보니 금봉은 예향(藝鄕)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진도(珍島) 태생이다. 대대로 벼슬도 하고 부유하게 살아 온 집안의 후예로서
생장(生長)과정이 평탄하고 특히 예능에 대한 재질을 뛰어나게 타고났다. 진도에 뿌리박은 예묘(藝苗)가 무등산(無等山) 아래 의재
허백련(毅齎 許百鍊) 화사(畵師) 예원(藝苑)에 심어지니 장차 남화(南畵)의 맥통(脈統)을 이어가야할 대망(待望)과 임중도원(任重道遠)이라는
천시(天試)의 험로(險路)를 걸어온 화가(畵家)였다.
김추사(金秋史) 선생이 제주도 유배지에서 풀려나 귀륙(歸陸)할 때 제일 먼저 상륙 한 곳이 진도요, 상륙해서 머무는 신세를 진 댁이
바로 금봉 가문(家門)이었으니 우리 김문(金門)과도 일찍이 연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요, 천재(天才) 화생(畵生)을 길러낸 의재(毅齎)
선생은 바로 금봉 고종형로(姑從兄老)이시니 그 인연 또한 천여(天與)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자, 예술가의 출세 문명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과정이 있다. 하나는 인세人世에 이미 역사전통으로 형성된 예도(藝道)와 예사(藝史)를
닦아서 이룩한 스승에게서 배워 그러한 예술 분위기 속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른 바 계파(系派)에 속한 화가다. 또 하나는 그러한
기성(旣成) 예계(藝界)를 섭렵하거나 그 경지에 어울리는 화풍을 일삼지 않고 자기 홀로 타고난 기능을 발휘하고 사람들의 발길이라고
할 수 있는 화탐(畵探)이 미치지 않는 처녀지(處女地)를 탐색하면서 남이 알아주지 않거나 모르는 경지를 열어가는 은둔 고독한 화가이다.
이런 화가의 경우 당대에는 이름이 나거나 세상이 알아주고 그 화품(畵品)을 감상하는 평론(評論)이 생겨나지 않지만, 세월이 지나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 어떤 탐색가(探索家)에 의해 발견될 경우 정통화풍(正統畵風)과 경지(境地)와 유맥(流脈)을 달리하는 이군돌기(異軍突起)의
화통(畵統)으로 등장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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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화가가 자기의 화풍과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고, 세상에 이미 알려진 기법,
이론, 경지에 그대로 몰두 또는 집착하고 있다면 현실 환경에 부합하는 화가일 뿐 따로 독출(獨出)한 화사(畵師)라고는 추숭(推崇)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화가나 학자의 수행과정은 춘하추동(春夏秋冬) 계절에 절주생성(節奏生成)과 같다. 생육(生育)은 부모로부터 교화(敎化)는
사부(師傅)로부터, 재기성정(才氣性情)은 앞서 성취한 사람에 의해 생장(生長)해야 한다. 하지만 생장교화(生長敎化)의 과정이
끝나면 반드시 자기 나름의 독창적인 학문, 예술의 세계를 창진(創進)해 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화가는 남을 가르치는 화사(畵師), 화생(畵生)은 될지 모르나 화성(畵聖), 화종(畵宗)은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기나긴 수련과 창작의 과정을 겪은 다음 인생만년(人生晩年)이라고 할 수 있는 추동기(秋冬期)가 되면 화풍(畵風)이나
예경(藝境)의 자기 변신이 꼭 있어야 한다.
내가 금봉을 안지가 30년이 넘었는데 금봉의 화풍과 경지가 점변(漸變)하다가 근자에는 격변(激變)하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다. 금봉의 스승인 의재 화백이 1977년에 세상을 뜨셨으니까 금봉이 그 뒤를 이어온 지도 벌써 30년이다. 30년이면 인생의
일세(一世), 세공사계절(歲功四季節) 중의 한 계절이 변하는 시간이다. 몇 년 전 나에게 그려준 그림을 보면서 나는 금봉이 의재한테서도
벗어나고, 남화(南畵)라는 화사(畵史), 화통(畵統)에서 크게 전변(轉變)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단적인 예에 불과하겠지만 나에게
준 그 그림은 나의 서재(書齋)를 그린 것이었다.
해돋이 60 x 47cm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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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골산(皆骨山) 80 x 97cm 1999
그렇다고 금봉이 우리 집에까지 와서 실지로 산수(山水)를 보고 그린 실경(實景)은
아니지만 그 그림이 나를 깨우쳐준 교육은 지대(至大)한 것이었다.
그 그림은 금봉이 상상으로 나에게 그려준 것인데 산은 온통 수림(樹林)으로 울창하고 심오하나 서재는 오히려 작고 보잘
것 없는 고가(古家)로 되어 있었다. 울타리도 없고, 대문 정원 인로(人路) 등 사람이 사는데 있어야 할 속기(俗氣)가
전혀 없다. 이 그림을 처음 대할 때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년간 표구를 하지 않고 있다가 작년 10월
초 일본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참석하면서 몇 수(首)의 시작(詩作)을 하느라 이 그림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그림을 다시 꺼내 본 나는 금봉이 나에게 간권(懇勸)하는 정신경지(精神境地)가 그린 그림 속에 있음을 비로소 관감체찰(觀感體察)하게
되었다. 그래서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지었다.
萬木 林一陋居
만목총림 속에 외로운 집 한 채
中藏內外古今書
속에는 동서고금의 책이 가득하다
無扉無逕無籬落
길도 문도 없고 울타리도 없으니
六合爲任捲舒
천지를 제집삼아 호흡하며 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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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봉이 나의 서재를 그리면서 왜 산림(山林)만 울창하게 하고, 조그마한
누옥(陋屋)에는 울타리도 사립문도 길도 없이 천지육합(天地六合)이라는 광막한 공간 뿐 육합 속에 따로 칸막이 하나 하지
않았을까? 한 마디로 말해서 나보고 이제는 책에 묻혀있지 말고 서재 밖으로 뛰어 나와 천지산하(天地山何)를 무대삼아 마음대로
노닐라는 권고였던 것이다.
이는 지난 사경(死境)에서 깨어나면서 학문이론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처세관(태도)이 달라지면서 직감(直感)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책을 덮고, 서재를 뛰쳐나와 실재하는 자연을 무대로 내 인생의 여명(餘命)을 향유(享有)하기로 작심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나의 서재는, 마치 누에가 고치를 뚫고 나와 하늘로 날아가자, 그 고치는 속이 텅 빈 빈껍데기로 남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여 병석(病席)에서 오언절구(五言絶句) 두 수를 나직이 읊었다. 修道如治蠶
도를 닦는다는 것은 마치
누에를 치는 것과 같다.
書桑供誦
책과 뽕잎, 그것이 글을 외우고
뽕 먹는 것을 돕는다.
終眠上架後
네번 수면을 끝내고 시렁에
올라가 실을 토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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纏蠶入禪參
자신을 얽어매는 고치를 짓고
참선에 들어갔네
禪通庠化蛾
참선이 통했는가, 누에는 벌레가 되고
벌레는 나비가 되었네
破繭飛天霞
번데기가 나비되자 고치를 뚫고 나와
하늘로 날아갔네
昔日讀書屋
옛날 글 읽던 누옥(陋屋)이
今爲無主窩
이제는 주인 없는 와옥이 되었네
금봉의 화풍(畵風)변화에 영향을 받아 나는 책을 덮고 서탑(書榻)에서 내려와 서재의 문을 나섰고, 죽음 옆의 문턱에서 도망쳐
나온 뒤 꿈속에 있었던 정경을 여러 수의 시로 썼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失落死生瀕
어쩌다 잘못되어 생사生死사이 바다와 육지 물가에 빠졌는가?
神推造化源
어느 귀신이 무슨 힘으로 나를 다시 조화의 근원으로 밀어 올렸는가?
爲何救老物
무엇 때문에 어디다 쓸려고 이 늙은 것을
살려냈는가?
唯著報重恩
나에게는 저술을 마치고 정색(情色) 염염(艶炎)을 연출하는 것만이 보은인 줄 안다.
率修明大德
하늘이 주었다는 천성을 거느리고도 천도와 인도를 이을 수 있는 명성(明誠)의 교(敎)에 충실하고
狂猾洗浴氣
이제는 서탑에서 내려오고 서재를 떠나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미친듯 노래하고 춤추며 칠십 여년 쌓인 울분과 속기를
씻으리라
心恢諧萬侑
대심(大心)은 얼마나 넓다고 하던가? 우주를 품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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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 56 x 66cm 2007
莊演太平春
중생(重生)이 준 여년(餘年)을 장엄한 태평춘(太平春)으로 연출하리라!
나처럼 이론학문을 하는 사람은 격식에 얽매여 자유분방하게 정색(情色)에 노닐기를 수줍어한다.
그리고 여전히 성철(聖哲)께서 주신 가르침 안에서만 안주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제야 이것은 인생의 마지막을 장엄하게
마무리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래도 예술인들은 좀 다르다. 나름대로 만년(晩年)에 이를수록 자기 세계를
지어낸다.
금봉은 이런 면에서 나를 앞질러갔고 은연중 그 생애와 경지를 나에게 암시해주고 있다. 말하자면 금봉은 벌써 화가의
수행과정을 마무리하고 자기 세계를 열어가는 것이다. 배움과 창진(創進)의 과정이란 무엇인가?
불교에서 말한 대로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데는 뗏목과 배가 필요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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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피안(彼岸)(열반)에 오르려면 뗏목과 배를 버려야 한다.
반야(般若)에는 세 가지가 있다. 실상반야(實相般若)요, 관조반야(觀照般若)요, 문자반야(文字般若)다. 실상(實相)은
본래의 우주 자연이고 이를 관조해 낸 이는 석가모니(佛)이며 그 관조한 것을 설법으로 옮긴 것이 문자반야(文字般若)다.
우리는 모두 이 문자반야만 배우고 매달려왔으므로 실지(實地)의 관조, 실속을 의식하거나 체득하지 못했고, 더욱이 실상은
문자나 관조에 가리워져 명합(冥合)하지 못했다. 그래서 늙어서는 문자반야에서 관조반야에로 회귀(回歸)하고, 다시 관조반야를
넘어서 실상반야와 명합 되어야 한다.
금봉의 화풍(畵風)은 이를 무언(無言)으로 암시해주고 있다. 금봉은 문자반야에 얽매이지 않고, 관조반야 속에 유희(遊戱)하며
그 속의 운무(雲霧)를 헤치고 어렴풋이 보이는 실상반야를 낚아채려하고 있다.
2007년 3월 12일 병석에서 두서없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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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수의 새로운 형상성
김남수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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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 50년의 경륜을 쌓아온 금봉 박행보는 옛 국전으로 화단에 등단한 중진이다.
지난 68년부터 44년까지 꼭 10년 동안에 무려 여섯 번이나 특선을 따냈다. 또한 73년과 74년에는 동 국전에서 문공부장관상과
국무총리상을, 그리고 80년에는 국전 추천작가상을 수상하여 당시 최다 수상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한국산수에 발군의 재능이 뛰어나 스승의 것과 전혀 식별이 어렵다는 항간의 일화가 전해질 만큼 그는 젊은시절부터 그림의 귀재라는 평을
받았다. ‘그토록 열심히 스승의 작품세계를 쫓는 각별한 이유는...”이라는 필자의 질문에 “사혁(謝爀)의 육법(六法)에도 전이모사(轉移模寫)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당시 현대교육이 전무한 상황 하에서 용필 용묵이나 발묵과 선염, 솔채 등 하나하나 스승의 가르침을 쫓지 않고서는
전수가 불가능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임사(臨寫)는 최상의 교육방법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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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악(楓嶽) 56 x 66cm 2007 |
달마산(達馬山) 97 x 127cm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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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나, 훌륭한 스승의 철학과
사상은 배우되 그림만은 홀로 서야 한다는 선배님들의 교훈이 금언이었습니다. 습작기에 열심히 모사를 했던 것은 스승의 문하에서 출가를
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었죠. 그러나 창작은 모방에서 출발한다는 말처럼 한시(漢詩)에도 기승전결(起承轉結)의 형식과 규제가 있고,
화론에 나오는 수(守), 리(離), 파(破)의 변화과정을 거쳐 오늘의 본인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스승의 홍은(鴻恩) 잊을 수
없습니다”라고 술회한다.
금봉 박행보의 산수화를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점진적으로 완만한 변화를 거듭해 온 것이지만 그 진폭은 상당히 큰 것이었다. 이른바
관념적인 전통화법으로부터 실험성이 강한 현대적 감각의 평면 구성에 이르기까지 물감과 재질 등 끊임없는 실험작업을 거쳐 오늘의 독자적인
개성과 조형 어법을 |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최근 그가 집중적으로 탐닉하고
있는 산수자연을 통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원근법을 배제한 단순한 평면 구성이라든지, 전원도시의 완만한 곡선과 구조물을 기하학적인 선과 면으로 화면을 분할한다든지,
강렬한 한국적인 색채효과를 발현한다든지, 순지나 한지를 여러 겹으로 배접하여 마치 석공이 모난 정으로 쪼아댄 석탑의 렐리프 질감을
마티엘 기법으로 도입한다든지 등 지금까지 그의 조형어법에서 발견하지 못한 엄청난 변화를 지적할 수 있다.
한국성을 고양함으로써 세계의 예술 양식과 접목하고 공존하려는 새로운 시도로 긍정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그의 예술 양식은 자생적인
한국인의 겸양과 미덕, 관용과 여유의 미학이 농축된 이번 종이 작업은 잔잔하면서도 조용한 한국인의 정서가 화면 위에 물씬 배어있는
가능성과 새로운 방법론을 탐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아스팔트 문명의 질곡 속에서 복제화되어가는 인간들의
모습과는 절연된 도심의 근교나 한가로운 농촌 풍경, 해안 풍경과 남도 산수의 산자락과 암벽의 단애, 맑고 청윤한 계곡, 목가적인
전원풍경 등 어머니 젖가슴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그어 가는 아기자기한 산세의 흐름 등 문기가 넘치는 화면이 전개되고 있다.
영원한 설화와 전설을 간직한 고향마을, 마음의 보금자리 같은 그의 서정과 향수가 밴 화면들은 어림잡아 40년은 꼬박 그렸음직한 숙련된
기법이 돋보이고 있다. 고매한 맛과 향기를 쏟아내는 청윤한 그의 문인화는 일필 일회성의 단숨으로 내려진 박행보만이 가능한 예술성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인격과 자화상만큼이나 순결하고 정갈스러운 그의 작품세계는 흔히 우리가 보아온 그림과는 많은 다른 것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의 작업 단상(斷想) ‘애묵론(愛墨論)’을 여기에 소개해 본다. “먹처럼 아름다운 색깔은 없다. 먹은 모든 색의 종합이며 먹의
농담 속에 동양정신의 생명력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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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 70 x 74cm 2007
굴비 45 x 45cm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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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색의 남용을 경계하는 것은 그 속에 먹을 쓰는 이의 인격과 소양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은 다루기가 힘들고, 함부로 접근하기도 어렵다. 먹과 보다 친숙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것은 나의 예술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앞으로의 과제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의 먹글씨를 보고 가장 한국적인 조형예술이라고 한다. 그들의 눈에 비친 감식안은 한시의 뜻풀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상형문자나 행초서와 같은 먹의 조형성과 조화로움에 있다. 우리글씨에 육자배기 같은 가락이 있는 것은 필선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먹물이 떨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먹의 오묘한 조화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미술의 가락이요, 리듬이 아닌가”라고
적고 있다. 그의 문인화에 물고기가 살 수 있는 것도 오염되지 않은 청순한 향기 때문이다. 활달한 운필의 세가 더도 덜도 아닌,
한치의 틈새도 주지 않는 화면의 황금비적인 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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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金剛山) 65 x 85cm 2007 |
세종의 얼-1 67 x 95cm 2008
에서 그의 심오하고 풍부한 정신주의를 읽을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의 산수화가 문기 있는 경지에 도달할 때 비로소 한국산수의 완성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렇게 따져보면
금봉 박행보는 한국 미술의 전통과 현대를 겸전하고 있는 역량있는 화가이며, 생래적으로 화가의 재질을 가지고 태어난 보기 드문
재사라고 할 수 있다.
竹翠山房에서
- 金峰 朴幸甫 仁兄 -
孫光殷(전남대학교 명예교수)
竹翠山房에서
먹향기 수묵 빛깔로 풍겨나와
시를 읊으면
시는 짙푸른 대나무 빛깔
대나무 빛깔이다.
귀한 손님 맞아 오가는 말소리
빛깔 더욱 맑아지니 바람소리 난다. 대바람 소리 난다.
쏴아 청아한 대잎사귀 소리 살랑살랑 흔들리니
흥취 더욱 더해지고,
밝고 맑은 빗방울 뚝뚝 떨어져 묻혀오는 소리
내 마음속 사무치게 간절한 청을 부르는 소리
속도감 있는 붓의 운필 너무 경쾌하니
한가하면서도 융승깊게 기운 생동하는
푸른 물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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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운(松韻) 65 x 85cm 2005
詩書畵 三絶 흥건하게 스며나온 소리
고요히 보고, 엿듣고 있으면
붓은 높낮이 더듬어 풍류로 숨쉬고
잔잔한 水墨畵 山水畵까지
농담짙은 담채색, 발묵으로
화사한 風情 퍼져나가네.
깊게 높게 순박한 마음, 천진스럽고 여름탄 웃음,
뜸쑥한 무게 넘쳐난 색깔 그대로
畵格을 이루었네.
겸손함으로
두툼하고 수더분한 몸가짐
후덕한 맛...
무한한 먹의 농담 속에서 삶의 무슨 간절한 빛깔 출렁이는 의미를 찾고 있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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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90 x 70cm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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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약력
• 1968-1977 국전 서예사군자 부문 입선 4회, 특선 6회
• 1973 제22회 국전 문화공보부장관상(수석) 수상
• 1974 제23회 국전 국무총리상 수상
• 1977-2001 전남도전, 무등미술대전,
광주시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 1978 경미화랑(서울), 부산화랑(부산) 초대개인전
• 1980 제29회 국전 추천작가상 수상(예술원회장상)
• 1980-1985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출강
• 1982-2001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장
• 1983-2001 동아미술제 심사위원, 운영위원
• 1983 프랑스 주재 한국문화원(파리),
송아당 화랑(대구) 초대개인전
• 1985 르-싸롱 한국초대특별기획전
(파리 그랑팔레미술관)외 단체전 다수
• 1986-1991 호남대학교 미술과 교수
• 1988 한국서예 一白年, 예술의 전당, 서울
• 1992 전라남도문화상 수상(예술부문)
• 1996-2000 광주비엔날레 이사
• 1997 한국화특장대전(전국공모) 심사위원장
• 1997 갤러리 명지원 초대개인전(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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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 선화랑 초대개인전, 서울
• 1999-2004 (사)한국문인화협회 이사장
• 2000 박행보화집 출간기념전(남도예술회관, 광주)
• 2000 호남누정문학시리즈
(박준규, 최한선, 박행보 공저)
-1. 시와 그림으로 수놓은 소쇄원 사십팔경
-2. 달관과 관용의 공간 면앙정
-3. 속세를 털어버린 식영정
• 2002
-4. 미인곡의 산실 송강정
-5. 환벽당 서화당 그리고 독수정
• 2002 대한민국미술축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서울)
• 2003 영남. 호남 그리고 충청전(대전시립미술관, 대전)
• 2003 옥과문화훈장 수훈
• 2006 한국미술조망전(세종문화회관, 서울)
• 2007 박행보 작품세계와 삶 출간기념전
(대동갤러리, 광주)
• 現, 현대한국화협회, 한국문인화협회,
한국미술협회 고문, 연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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