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와 여인 200 x 185cm 1930
비둘기 70 x 54.5cm 1949
• 필자 이미란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신동아 그룹 63갤러리에서 큐레이터를 역임 하였으며 캐나다 에밀리카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현대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예술기획과에 재학 중이며 메리츠증권 리츠클럽의 아트 컨설턴트와 아트블루 국제부 전시기획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 saykoala@hotmail.com |
|
길 한가운데 부러질 듯 가느다란 두 다리로 유유자적한다. 자동차가 달려들어도 좀처럼 피할 줄 모르며 우둔하기 짝이 없는 온순한 성격의 새가 비둘기이다.
그러나 성경속의 창세기 노아의 방주에서 노아가 홍수의 범람을 알아보기 위해 날려 보낸 새가 바로 비둘기였다. 비둘기는 귀소본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 비둘기가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와 물이 빠진 육지를 발견함으로 재앙의 끝임을 알린다. 이후 비둘기는 희망을 전달하는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 비둘기가 피카소 그림 속에서는 평화를 갈망하는 메신저로 탄생한다.
1981년 스페인 말라가 지방 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아버지 돈 호세가 비둘기를 자주 그리던 것을 보아왔다. 피카소는 그 가족이 살던 메르세드 광장에서 수천 마리의 비둘기와 어울리며 자랐고, 새장 속의 비둘기와 데생을 위해 박제된 비둘기와의 인연을 가졌다.
그가 걷기도 전에 처음으로 발음했던 말이 ‘엄마, 아빠'가 아닌 “피즈, 피즈!”라는 연필이란 뜻의 스페인어였다.
또래와는 다르게 말과 걸음을 배우는 것 보다 그림 그리는 것을 먼저 익힌 그의 유년기는 이미 예술적 천재성을 보여주었다.
어릴 적 피카소는 그의 아버지가 그리다 만 정물화에 비둘기 다리를 그려 넣어 그림을 완성했다. 돈 호세는 그 모습이 금 새 날아오를 듯 생생함에 탄복해 자신의 팔레트와 붓을 아들에게 건네줬다.
피카소가 어린시절 접했던 비둘기는 사랑스럽고 친근하기도 했지만 내장을 꺼내고 껍질만 남겨놓은 박제된 모습에서 그는 두려움과 잔인함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비둘기는 그의 인생에 첫 번째 모델이자 첫 번째 친구였다.
그런 그에게 비둘기가 유화작품으로 나타난 것은 20살 때였다. 여기 <비둘기를 안고 있는 소녀>(1901년)작품은 가냘프고 어린 소녀가 부드러운 손으로 비둘기를 감싸 안은 따뜻한 모습이다. 빨간 입술 가까이에 대고 상처받은 비둘기를 위로하며 속삭이는 듯 비둘기를 향한 진심어린 애정이 푸른색조로 묻어나고 있다.
그의 비둘기 그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10년 <비둘기>라는 작품에서 형체가 해체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러한 비둘기의 표현방식은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단순한 표현으로 기하학적 형태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입체파 그림과 연관성을 보여준다.
비둘기는 피카소에게 있어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평화의 상징이었다.
그는 1차 대전의 발발을 시작으로 1936년 스페인의 시민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늘 자유에 대한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다. <게르니카>(1937년)를 통해 전쟁의 잔인함을 충격적이고 격렬한 표현으로 비극을 쏟아냈다.이 잔혹한 그림 속엔 손발이 잘려진 인체와 동물 등 그가 다뤄왔던 모델들이 보이지만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는 보이지 않는다.
파리에서 공산당이 주최한 평화회의가 열린 때는 피카소가 남불 발로리스에 살고 있던 1949년 이었다. 이때 공산당은 피카소에게 평화를 상징할 수 있는 포스터 제작을 의뢰하였다. 어린시절을 보냈던 스페인 말라가에서 본 한 마리의 흰색 비둘기를 그렸는데 그 포스터는 유럽 전역에 널리 퍼졌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어떤 사물이 띄어야 할 필연적인 표현 양식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나는 말 할 뿐이다.”라고 했던 피카소는 일생동안 많은 화풍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비둘기에서는 내면의 솟아오르는 자유, 평화, 사랑의 뜨거운 염원을 형상화 하였다.
바람둥이 피카소에겐 일생에 여자가 7명이나 있었지만 비둘기는 딱 두 마리만 있었다. 하나는 평화, 자유, 희망을 상징하는 그림속의 비둘기였고 또 하나는 프랑수와즈 질로와의 사이에 태어난 스페인어로 비둘기라는 이름의 사랑스런 딸, 팔로마였다.
그렇다면 과연 피카소에게 있어 비둘기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아버지인 돈 호세의 그림을 뚜렷한 의미 없이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식당그림이라고 말 할 정도로 그림의 의미에 주목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샤갈에게 있어 소가 그의 고향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면 피카소에게 있어 비둘기는 그가 갈망한 바로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었다. 이것이 그가 화폭 속에 비둘기를 그렇게도 빈번하게 등장시켰던 가장 큰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