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일기 며칠 전 접시에 담아놓은 먹물이
바짝 말라있었다.
귀찮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씻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었던 것이다.
필요할 때 금방 쓸 수 있게
씻어놓아야 하는데……
접시를 가지고 화장실로 가서
가만히 물을 부으면서
나 혼자 쓴웃음을 짓는 순간 이게 웬일일까?
먹물은 남아있고 물이 흘러내려간 자국이
그림이 되는것이 아닌가.
붓이 아닌 물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것도 내가 얻으려고 한
파도의 형상이……
깨달음의 순간이라고나 할까
“바로 이것이다.” 라고 소리쳤다.
그대로 방으로 가져와서 말렸다.
“환상적 이었다.”
뇌리에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구도들……
쓰다 남은 먹물들이 나를 일깨워주었고
내가 추구하고 있는 작품의 길을
말해주었으며,
창작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 접시는 지금도 그대로 먹물이
말라붙은 채로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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