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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호 > 특별기획 > 미술논단 > 박선규 - 그림과 상(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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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I 술 I 논 I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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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Sun Kyu
그림과 상(象) 글 : 박선규 / 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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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緖言)
1. 사물의 개념
1) 기지 사물
2) 미지 사물
2. 사물의 물상(物象)
1) 형상(形象)
2) 식상(識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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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물의 사상(事象)
1) 이상(理象)
2) 수상(數象)
3) 내상(內象)
4) 외상(外象)
5) 기상(氣象)
6) 세상(勢象)
7) 의상(意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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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어(結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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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緖言)
그림은 상(象)을 그려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심상(心象)으로서 이미지 표현이다. 그런데 그 ‘이미지'는 어디로부터, 무엇으로부터 오는 상(象)인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사물(事物)'로부터 비롯된다.
만약 화가의 주변에 사물이 없다면 아무리 천재적 화가라도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사물이 어떤 것이 되었던지간에 사물이 있기 때문에 그 사물이 화가의 영혼 속에 하나의 상(象)으로서의 표상(表象的)인 ‘심상(心象)', ‘이미지'가 떠오르게 된다. 따라서 화가들은 사물을 떠난, 또는 사물에 대한 이해 없이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상(象)으로서 상(像)을 표현하는데 그것이 구체적 물성(物性)이거나 추상적인 것이거나 하여간 상(象)을 상화(像化)하는 것이 그림이기 때문이다.
자연 사물을 우리는 ‘만물(萬物)'이라 말한다. 이 때의 ‘만물'이라는 것은 꼭 만 가지 종류의 사물적 수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몇 만종이 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무수하다는 의미로서 ‘만물'이다.
이처럼 무수한 만물가운데서 화가는 무엇을 소재로 어떤 심상(心象)을 표현할 것인가, 이것에 대한 고민에 앞서 사물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 가운데서 그림의 표현내용 으로서 가장 적절한 것은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러한 후에 표현내용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그려가야 한다.
사물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막연히 눈에 보이는 사실이나 어떤 느낌을 자기 시각에서 하나의 상(象)으로 하여 표현하려고 하기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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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그림은 언제나 실패, 정판교(鄭板橋)의 말대로 ‘실제로 보는 대나무와 가슴으로 그린 대나무, 손으로 그린 대나무'가 각각 달라서 결국 그 그림은 실패작이 되는 것과 같은 일이 빈번이 일어난다.
이러한 실수를 거듭하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사물의 상(象)을 먼저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죤 듀이(John Dewey)의 “감정은 상상되어진 재료 내에서 일련의 변화를 통하여 상에 대한 확실한 초상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만 명확한 형태를 띠며 표현되어짐을 발견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상(象)에 대한 확실한 인식에 따른 감정의 움직임만이 좋은 그림 내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 사물의 개념
말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는 “세계 전체도 사물이며, 심지어 신(神)까지도 스스로 현상하지 않는 것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철학 용어로 사물이라 불린다.” 하였다.
이러한 개념에 비춰보면 그림도 사물이다. 또한 그러한 존재방식의 시각에서 뿐만 아니라 사물적인 측면 이 외의 어떤 것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한 사물적 존재로만 볼 수는 없다. 즉, 일반 사물과 다른 사물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물(事物)이란 일(事)과 물건(物件)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림에 있어서 사물적인 것은 사물의 ‘사건적(事件的)'인 것이 그 목적물이다. 사건(事件)이란 물건에 따라 발상하는 사건적인 것이다. 사건적인 것도 물질적인 것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고 할 때 사물에 대하여 물건적인 것의 총체적인 면을 모르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물적인 것을 통하여 사건적인 것을 드러내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에 있어서 구체적 사물형태를 표현하는 것은 그 사물의 구체성으로서 단순한 형질을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사건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에 대한 사적인 면과 물적인 면에 대한 확실한 인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1) 기지사물(旣知事物)
앞에서도 말했지만 현존하는 사물은 무수하다. 우리의 생활주변에 있는 것들로부터 멀리 과거의 것들로서 역사적 사물도 있다. 일어났다 사라지는 사건들만 해도 그야말로 무수하다. 그 많은 사물들의 모양이 어떠하며, 어떠한 결과를 남겨 하나의 문화를 형성 했는지 알고 있는 것보다도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알고 있는 것들이라도 겨우 외형적인 것으로서 형이하학적인 것이 태반이다. 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한 앎은 사실상 거의 없다. 있다하더라도 극히 피상적인 것으로서 감성적인 측면 뿐이다.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사물에 대하여 안다고 하는 것은 사물적 측면의 것에 불과하다. 사물로부터 규정되어진 사물성(matterphysic)적인 것에 대하여 안다고 하는 것이다. 다만 도구적인 사물인가, 무생물적인 사물인가, 생물적 사물인가를 구별하는, 그리하여 돌은 돌일 뿐이고, 나무는 나무일뿐이라는 사물자체에 관한 것들이다. 그러나 화가에게는 이런 정도의 일반적 기지사물 정도의 앎으로서는 만족할 수가 없다. 주자(朱子)가 말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주변의 단순한 사물에 대한 기지현상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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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지사물(未知事物)
사물적 측면에서도 사실은 아는 것보다도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하였다. 예를 들면 우주의 직경이 2백억 광년의 범위라 하는데 어디서 어디까지를 직경으로 설정한 근거에 대한 것도 불확실한 설정이고, 그나마 설정된 직경 내에 존재하는 무수한 별들, 천 억개의 행성이 운집된 은하계가 천 억개가 넘는다는 그 방대한 우주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다. 현실적으로 등산할 때마다 흔히 보는 수종(樹種)의 이름도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사실상 안다하더라도 물적인 측면의 것에 불과하다.
물성 측면 이 외의 것으로서 형이상학적인 사적(事的)인 것이란 예를 들면 피리의 외적 형태를 이루는 질료적인 것과 형태성 이 외의 여러 가지 소리를 낼 수 있는 것, 즉 피리에 내재되어 있는 ‘소리'같은 것이다.
소리도 단순히 높낮이의 변화뿐만 아니라 소리의 조화로서 다양한 음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대단히 복잡하다. 인지주체에 따라 변하는 것까지 따지면 기지사물은 한계가 있으나 미지사물은 한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2. 사물의 물상
사물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사물이 존재방식을 취하기 위하여 그 나름대로 최적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고 하는 다양성도 존재하기 위하여 취한 형태성을 구비한다. |
1) 형상(形象)
그런데 이러한 물상(物象)도 존재방식적 삶의 형태로서의 형상과 식상(識象)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형상(形象)은 ‘형상(形相)'을 말하는 것으로 에이도스 (eidos)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질료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으로 어떤 모습자체를 의미하기도 하며 감각에 떠오르는 대상의 다른 모습을 말한다. 이를테면 나무를 재료로 하여 일정한 형상을 가짐으로서 집이 되고 청동이라는 질적인 것이 어떤 형상을 취함으로서 보살상이 되는 것, 그리고 구름을 보고 달리는 말 모양같다든가, 바위가 마치 큰 곰이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양같다든가 등의 형상성(形象性)을 말하는 것이다.
2) 식상(識象)
앞에서 말한 물상(物像)의 형상성(形象性)은 외상(外象)에 의하여 그것이 ‘무엇'이라고 한 물체를 지칭함으로서 구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것이 어떠한 물건인가 식별케 하는 형상성을 가지기도 한다.
식상(識象)은 자연사물이든지, 또는 제작된 형태이든지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는가를 식별하고 인정하며 받아드리도록하는 형상(形相)이다.
3. 사물의 사상(事象)
물상(物象)은 상(相)에 의한 구별의식을 확정지워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상(事象)은 그러한 상(相)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서 물성(物性)으로부터 비롯되는 여러 현상성(現象性)에관한 것이다. 마치 먹구름을 보고 소낙비가 한차례 올 것을 안다거나 하늘에 구름이 바둑판처럼 잘게 나뉘어져 있으면 태풍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과 같은 현상적 상(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그것이 그와 같이 드러나게 하는 필연적인 것이 있다. 『노자(老子)』의 “상(象)이 있는 것은 도(道)의 흔적이요, 상(象)이 없는 것은 도(道)의 진리이다”고 말한 것처럼 그 필연적인 것을 알게 하는 것과 관계된 것을 사상(事象)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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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Velazquez) <메닙푸스> 179 x 94cm |
1) 이상(理象)
앞에서 말한 사상(事象)도 다각적인 면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즉 그 중 하나로서 이상(理象)인데, 사물은 물상적(物象的) 형상(形象)이나 식상(識象)의 성질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목적물적인 것과 사건적이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현상성을 띠고 있다. 이를테면 나무가 그러한 모양으로 자라고, 냇물이 그러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것에는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될 하나의 이치 즉, 그것에 대한 절대적 법칙이 있다. 이러한 이치는 형상(形象)을 통하여 관조자가 알게 되는데 이와 같은 것을 이상(理象)이라 한다. 어떤 도형에서 그것이 어떻게 그려졌는가를 알 수 있는 것도 그 도형 안에 이상(理象)의 성질로서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원을 볼 때 원의 지름이나 중심점에 의하여 어떤 크기의 원이 그려졌음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원은 단순한 원의 모양으로서 형태성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법칙에 의하여 그러한 원이 그려졌는가도 알게 한다.
2) 수상(數象)
물상(物象)에 침전되어 있는 것은 이상(理象)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구성과의 관계, 새것인가 헌 것인가, 또는 견고성이나 유연성 같은 형상(形相)도 있다. 가령 낡은 집을 보고 그 집이 몇 년 동안 더 지탱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수명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주름진 노인의 얼굴에서 오래된 동구 밖의 느티나무에서 인고의 세월을 읽어내는 것도 물상이 가진 또 다른 상(相)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것들을 수상(數象)이라 한다.
3) 내상(內象)
내상은 공간과 관계되는 것이다. 즉 내적 실상으로서 허상(虛象)할 때의 실상(實象)에 해당된 것이다. 실제로 공간을 점유하는 구체물의 체적적(體積的) 형상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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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외상(外象)
그러나 외상(外象)은 허상과 같은 것으로 입체물이 점유하는 실공간과 그 밖의 공간과 관계되는 것으로서, 실제로 어떤 모양을 이루지는 않지만 실제모양의 입체성적 구체 사실을 드러내는 공간성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사물이 공간을 점유할 때 인접된 공간의 변형된 공간성적 상(象)이다.
5) 기상(氣象)
기(氣)는 사람에 비유하면 생명력을 유지하는 에너지 같은 것이다. 중국 고전에 보면 “기가 흩어진 것을 죽음이라 하고 기가 모이는 것을 삶이라 한다.” 하였다. 기가 모였기 때문에 생명체가 살아서 존재하는 것이고 기가 흩어졌기 때문에 생명체가 죽어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는 다양한 분위기를 띠며 사물에 나타난다. 사례를 보면 물체의 형상을 통하여 어두컴컴함을 느낄 때 음기(陰氣), 밝고 환한 느낌의 양기(陽氣), 차가운 느낌의 한기(寒氣), 따뜻한 느낌의 온기(溫氣), 요망하고 간사함의 사기(邪氣), 방자한 느낌의 사기(肆氣), 신기한 느낌의 신기(神氣), 기괴한 느낌의 괴기(怪氣), 선명도가 불분명한 느낌의 인기(姻氣), 고풍스러운 느낌의 고기(古氣) 등을 말한다.
이러한 기는 하기(霞氣), 장기(匠氣), 묵기(墨氣), 진기(眞氣), 필기(筆氣), 초기(草氣), 색기(色氣)와 더불어 사물의 내면에서 밖으로 표출되는 에너지의 다른 양상을 말한다. 색에서 달콤함을 느낀다거나 따뜻함을 느끼며 차가움을 느끼는 것도 그러한 색기(色氣)에 의한 것이다. 둥근 모양도 어떤 필기(筆氣)에 의한 것인가에 따라서 매달려있는 느낌, 굴러가는 느낌, 팽팽하게 긴장된 느낌, 바람 빠진 풍선처럼 사라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기상(氣象)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그림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상(像)을 표현하는 원소적인 상(相)들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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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상(勢象)
물상의 사건적인 것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 진전될 것인가에 대한 느낌의 상(相)을 말한다. 이를테면 압축된 용수철을 보고 그것이 어떠한 방향으로 얼마나 높게 또는 멀리, 그리고 빠른 속도로 튕겨진 것인가를 알게 하는 현상추이(現象趨移)의 형상(形相)을 뜻한다. 『관자(管子)』에 보면 “천리로부터 만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는 형세가 있다 세(勢)란 반드시 형(形) 때문에 생긴다. 그러므로 형태가 단정하면 기세가 바르고 그렇지 않으면 기세가 한 편으로 치우쳐진다.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그렇지 않는 것이 없다, (自天地以及萬物, 關諸人事, 莫不有形勢焉. 夫勢必因形而立, 故形端者勢 必直狀危者勢必傾, 觸類莫不然)” 하였다. 이러한 물상의 세도 그림에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한 표현내용의 하나이다. 키네틱아트(Kinetic art) 의 운동자체를 표현한, 즉 동적 현상의 기세를 수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7) 의상(意象)
의(意)란 우주현상과 사회현상을 어떤 형상(形象)을 빌려 그 의미의 향방을 분명히 한다는 의미의 ‘의(意)'이다. 그러므로 의(意)는 하늘의 높고 땅의 낮음, 사물의 귀하고 천함, 그리고 부드럽고 단단하며 거칠고 섬세함이나 동적이고 정적인 현상의 진행 향방적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의 필연적 이치에 의한 것으로서 천취(天趣)적인 것이다. 마치 오월이 다 지나가면 곧 여름이 다가온다는 계절의 변화진행 현상 같은 것이다. 또한 높다, 낮다, 부드럽다, 단단하다 등의 정의(情意)같은 것이다.
종합하여 말하면 장화(莊和)의 『학화잡론(學畵雜論)』에 “깊은 산 그 골짜기가 다 하는 곳에는 사람의 발길이 드물다. 오랜 풍상과 더불어 자란 송백(松柏)이나 깎아지를 듯한 낭떠러지의 괴석들은 마치 사람이 서 있는 것 같고 앉아있는 것 같으며 누워있는 것 같다. 또한 마치 말 같기도 하고 소 같기도 하며 용 같기도 하다. (深山窮谷中, 人跡罕到, 其古柏寒松, 崩崔怪石, 如人之立者坐者臥者, 如馬者, 如牛者, 如龍者)”하였다. 구체 사물은 그것이 구체적 물성에 불과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그것들이 어떤 다른 모양을 띠고 있거나 또는 그러한 정취를 느끼게 된다. 이 때의 그와 같은 정상(情狀)을 의상(意象)이라 한다. ‘저 산은 어머니의 치마폭 같아서 보는 사람에게 포근하고 아늑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등과 같은 것도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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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물에서 비롯되는 의취(意趣)로서 정감(情感)을 띠고 있는 의상(意象)이다. 당지기(唐志契)의 『회사미언(繪事微言)』에 “무릇 높은 산과 흐르는 물, 그리고 우거진 숲 크게 자란 대나무 등 모두 한 폭의 그림 아닌 것이 없다. (凡遇高山流水茂林修竹, 無非圖畵』고 말한 것도 의상(意象)이다.
결어(結語)
르네 위그(Rene Huyghe)는 고호의 그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반 고호의 화가 생활은 겨우 10년 동안이라는 덧없는 경력을 가졌다. 1884년 3월 누에넨(Nuenen)에서 반 고호는 목사관의 정원을 스케치 하였다. 네덜란드 시대의 그의 다른 소묘들과 마찬가지로 우선 인상적인 것은 무한에 대한 집념이다. 지평선과 하늘, 인물이 향하여 가고 있는 저 절대적으로 먼 곳, 그 먼 곳으로 줄달음치는 조망, 헝클어진 나뭇가지로 둘러쌓여 있으면서도 그것과 분리되어 두드러지게 보이면서 소실점의 선들이 끝나는 곳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 교회라는 사실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네덜란드의 전형적인 화풍의 특성이 잘 보인다.” 하였다.
여기서 르네 위그가 말한 고호의 소재들은 앞에서 논한 것들에 비유해 보면 모두 사물들이다.
‘무한에 대한 집념'의 그 ‘무한'은 추상적인 상념으로서 사건적인 것이다. ‘지평선과 하늘'은 물성적인 것이다. ‘인물이 향하여 가고 있는 저 절대적인 먼 곳'은 의상(意象) 이다. ‘헝클어진 나뭇가지'는 물적 현상이다. ‘소실점'은 하나의 이상(理象)적인 것이다. ‘네덜란드의 전형적 화풍'을 양식(樣式)으로서 원리적인 것, 역시 이상(理象)적인 것이다.
결국 고호는 사물에 대한 물상적인 것과 사건상적인 것에 대하여 ‘무한에 대한 집념'으로 그 상들을 꿰뚫어 보는 직관력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이와 같은 이해가 없으면 과연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족히 증명되는 바이다. 예시된 작품 엘 그레코(El Greco)의 <성 안나와 어린 요한이 있는 성가족>은 어떤 상(象)을 그린 것이며 벨라스케스 (Velazouez) 의 <메닙푸스>는 어떤 상(象)을 그린 것인가? 전자는 사상(事象)으로서 기록적인 것이라 할 수 있고, 후자는 냉소와 멜랑콜릭한 표정으로 보아 의상(意象)을 표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그림은 이와 같이 사물자체에 침전되어 있는 다양한 상(象), 상(相)들을 직관으로 관조한 다음 오직 한 가지 상(象), 상(相)만을 표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러하지 못한 낮은 그림들은 사물에 대한 상(象)과 상(相)의 인식 부족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여러 가지 것들이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그림의 풍격(風格)은 낮아지고 화가가 표현하려는 내용의 그 명료성이 떨어져 과연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관객에게 정확한 의사전달의 메시지가 불분명해진다.
화가는 그림 그리기 전에 또 알아두어야 할 것,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 바로 앞에서 논한 그러한 것들이다. ‘구리를 모르면 금을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사물성을 모르고 사물의 어떤 것을 표현 할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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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El Greco) <성 안나와 어린 요한이 있는 성가족> 107 x 69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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