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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2002. 6. 27~7. 3
광주 무등예술관
오다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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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개인 후 풀밭에 나가보면 굼실굼실 꼼지락거리며 이름 모를 풀밑둥으로
기어오르는 달팽이를 볼 수 있다. 작고 여린 달팽이는 여러 갈림길 앞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머뭇거리고 있다. 그래도 제
갈 길은 잘 가고 있는 듯하다. 한참 후에 그곳을 다시 찾아가 보면 달팽이는 온데간데 없고 반짝거리는 빛만이 남아있다.
달팽이가 남긴 흔적은 너무나도 생생해서 도리어 아름다워 보인다.
이리저리 헤집고 지나간 얼룩진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인생의 길을 보는 듯하다. 우리는 매일매일 길을 걷는다. 그
길은 꽃으로 수놓은 아름다운 길일 수도 있고 된비알처럼 험한 길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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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길을 걸을 때마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시간의 깊이를 느낀다. 그 길을
따라 되돌아와 오지의 삶을 이어나가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지니기도 한다. 길은 무엇인가로 안내하는 유혹과도
같지만 실수하고 추락하기도 하며 승리하며 삶에서 삶을 재창조하거나 아직 창조되지 않은 새로운 길을 찾고자 우리는 길을
떠난다.
최근 나의 그림들은 자아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달팽이를 통해서 나의 모습을 찾고 우리의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단순히
아름다움이나 생명력만을 노래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 마찬가지로 직립하는 존재로서의 풀이나 꽃을 달팽이가 올라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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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유혹> 53 x 46.5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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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들풀> 18.5 x 45cm
하는 것은 무언가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려는 인간의 욕구와 동일한 조형적인 개념을 유도한다. 의인화된 물상을 통해 거꾸로
인간인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연역의 논리를 제시하기도 한다. 인간을 닮은 물상을 보면서 인간의 원초성, 즉 고등한 존재로서의
인간도 자연 앞에서는 하나의 동등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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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지배하는 일반적인 원리들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형태의 변형 및 이미지만을 부각시켜 조형적인 재해석을
하는데, 나의 그림은 이와 같은 의인화를 표현수단의 하나로 채택하였다. 달팽이와 자아(自我)를 일치시켜 의인화한 것은 사실적인
표현을 넘어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색이 화려하고 모양이 탐스러운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마치 중독된 듯
그 주위만을 맴돌거나 그림자에 유혹되기도 하고 우리의 식탁 앞에 올려진 달팽이의 살기 위한 몸부림, 획일화된 삶의 굴레 속에
갇혀 무료해져 가는 모습들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제각기 등에 집을 진 채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세상사 모든 업을 다 짊어지고 힘겨워하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업고 다니는 무거운 짐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벗어 던지고 싶지만 그것이 자신의 일부요, 삶이기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흔적> 29 x 7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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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73 x 51cm
<밤을 위한 요리> 66.5 x 46cm
작품의 모티브로 주로 다루고 있는 달팽이, 풀과
꽃, 블록의 사각형 이미지들은 음양의 이치에 따르고 있다. 음양이란 상호 대립과 상호 조화의 두 가지 측면으로서 자연계의
물상과 현상 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천(天)과 지(地), 낮과 밤, 명(明)과 암(暗), 동(動)과 정(靜),
동물과 식물, 남성과 여성, 외재(外在)와 내재(內在) 등 상호 의존관계를 가지고 있다.
어떤 물상이든 모두 대립하면서 우주간에 존재하고 우주의 온갖 사회가 성장 발전과 소멸이라는 음양 변화의 법칙에 적용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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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음양은 만물의 강령이며 변화의 근원인 것이다.
음양 사이에는 상호 자생, 상호 의존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독립해서 존재할 수는 없다. 식물은 번식을 하려고 하지만 자기
자신은 정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번식행위를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식물들은 멀리 퍼져나가는 냄새를 풍기거나 색으로 미혹에
빠뜨려 곤충이나 동물들을 동적으로 식물이 있는 곳으로 오게 한다. 동적으로 움직이는 자체는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음양은 사물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대립면이 바뀜에 따라 변화하고, 상대에 따라 똑같은 소재가 음이나 양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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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 53 x45cm
예를 들면 남성은 여성에 대하여 양이라고 하지만 그 남성은 자기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음으로 존재되고, 약한 사람에게는
양으로 존재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양이나 절대적인 음은 없게 되는 것이다. 딱딱한 조가비 속에 부드러운 몸을 가진
달팽이도 암수 한몸이 서로 존재하는 중성이지만 혼자서는 번식할 수 없는 자웅동체이다. 달팽이는 동물인 양(陽)의 속성과는 달리
생태적으로 음(陰)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매우 조심스러우며 소극적이고 축축한 곳에서 밤에 활동하는 자기방어적인 보호본능을
가지고 있다. 마치 여성과도 같아서 여성적인 내면의 속성을 보여주고자 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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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과 수직선이 서로 조응하는 사각의 블럭(Block)
공간이 바로 그러하다. 이것들로부터 우리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지금의 틀을 깨고 자유롭고 싶어하는
모습과 결코 자유로워 질 수 없다는 모습의 병치가 일그러진 삶에 대한 체념으로까지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삶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앞으로 계속 전진하고 있다. 보다 나은 미래의 모색을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이웃도 없고 아량도 없는 개인주의와 이기심으로 가득 찬 현대인들은 여유와 인심이 사라져 버렸다. 아파트에서 저마다 혼자 달팽이처럼
갇혀 남들의 삶에는 관심 없이 자기의 유익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기주의자들이 되어간다.
자신만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원룸(Oneroom)의 공간에서 생활하고 심지어 그 속에서 고독하게 인생을 맞게 되는 슬픔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과 디지털이라는 개념으로 다가온 세상은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물결 속에 휩쓸려 빠른 것만이
살아남는 것이라는 식의 가치를 품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옳은 길로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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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런 사람은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것은
여행하는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들 한다. 사람들은 인생행로라 불리는 무수한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며 머뭇거리며 걸어간다. 모든
것이 빠르게만 변해가는 이 시대에 앞만 보며 달려가기에 급급한 사람들, 오로지 목표만을 향해서 최단거리로 달려가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은 없는 듯 도시에서의 일상의 삶은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듯하다. 길을 간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방식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러한 길을 자신의 고독의 그림자와 더불어 밟고 간다고 생각해보면 그 길은 가장 내밀하고 밀도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볼 수 있는 눈일 것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는 이 시점에서 삶의 여유를 갖고 느릿하게
우리가 가는 길을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 .
2002년 6월 초여름에
박 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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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음양은 시간과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 모든 물상의 성질을 비교하여 영향을 받은 상태가 우리 눈으로 보이는 현상세계에서
음양으로 존재가 된다. 직장상사와 직원이란 존재가 우리 눈에는 음양관계로 부각이 되듯이, 사각상자와 달팽이의 상호 의존관계도
그러하다. 모더니즘적 합리적인 무결점을 향한 완벽한 조직을 의미하는 사각형의 삶의 공간 속에 구속되어진 달팽이의 삶은 계속 지속되어지는데
이러한 상태가 계속될 때 서로의 음양 존재는 계속되는 것이다.
매일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 똑같은 스타일의 유행, 대량생산된 획일화된 상품들 속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사회 문화적 규범에
길들여져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그것들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상실되어 가는 것을 알게 되고 뛰쳐나오고 싶어한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내면의 충동을 형상화한 것이다. 규격화, 획일화된 사각상자의 삶의 공간에 갇혀있는 자아(自我),
수직선과 수평선이 서로 엇갈려 만나는 사각형의 구조를 벗어나 자유를 향해 탈출하려 하지만 결국 그 사회를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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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 65.5 x53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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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날> 69 x 45cm
<뒤엉킨 관계> 68 x 69cm
구름은 비를 데리고
바람은 물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새는 벌레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구름은 비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나는 삶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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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는 저의 집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백조는 언 호수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어린 바닷게는 또 바다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와, 나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 있는가
류시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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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약력
*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 개인전(광주 무등예술관)
* 광주광역시미술대전 특선(광주비엔날레 전시관)
* 개천미술공모대상전 특선 2회(경상남도 문화예술회관)
* 무등미술대전 특선 2회(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광주시립미술관)
* 무등미술대전 입선(광주시립미술관)
* 한국화전국공모대전 입선 및 특선
(광주시립미술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 전국대학미전 동상(광주 호남대학교 전시실)
* 임오년 세화·부적전(광주 남봉갤러리)
* 광주비엔날레 기념 2002 한국미술협회 초대전
(광주학생교육문화회관)
* 1호전(광주 무등예술회관)
* 전남대-연변대 국제교류전(광주비엔날레 전시관)
* 청년한국화협회전(서울 공평아트센터)
* 한국정예작가 초대전(서울 동아갤러리)
* 6.25 51주년 안보현장 스케치전(광주시립미술관)
* 아시아여성미술 초대전(서울 광화문갤러리)
* 광주청년미술작가전(광주 남도예술회관)
* 세발까마귀전(광주 남도예술회관, 인재갤러리, 무등예술관)
* 전통과 형상회(광주 남도예술회관, 광은갤러리)
* 한국현대미술 오스트리아 Perchtoldorf bie wien시장 초대전
(오스트리아 Perchtoldorf bie wien 문화원)
* 비젼 2000(광주 궁동갤러리)
현재
* 전통과 형상회, 광주청년미술작가, 청년한국화협회, 세발까마귀,
한국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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