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 2002년 6월은 한국인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달로 기억될
것이다. 건국이래 그처럼 많은 인파가 물밀 듯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통일된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던 적이 언제
있었던가. 더구나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남녀노소가 일체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 조직적인 모습을 어디서 볼 수 있었던가.
그렇다. 제17회 한.일월드컵대회가 열린 6월 한 달 동안 한국인들은 월드컵뿐만 아니라 세계스포츠사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
|
저마다 붉은 옷과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한국축구를
세계4강의 신화를 만들어내는데 동참했다. 질서정연한 거리응원을 통해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새삼 자신이 그처럼 열정적인 데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문화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시민운동 형태로 이루어진 그 자발적인 거리응원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한국인의 축제, 월드컵의 |
---------------------------------------------------------------------------------------------------------------------------
경이로움이었다. 붉은 색 물결을 이룬 거리응원은 월드컵을
즐기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인 패턴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을 통해 거리응원을 본 세계 각국의 축구팬들은 전혀 새로운
패턴의 월드컵 응원방식을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다. 수백만명이 운집하여 그처럼 열광적인 응원전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형태의
폭력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축구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그 평화로운 거리응원은
한국인의 높은 문화의식 및 행동양식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는 기회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한국대표팀의 월드컵 4강은 어쩌면 부수적인 결과였는지 모른다. 서울 광화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 대도시 중심가에 수놓은 붉은 색
꽃물결은 세계인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을 강렬한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월드컵을 개최한 국가로서의 최대의 수확이었다.
적어도 이번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이제까지 한국을 잘 알고 있지 못했던 사람들조차 한국이라는 나라를 결코 잊을 수 없는 나라로 인식시키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의심할 수 없기에 그렇다. 거리응원, 즉 거리축제는 그간 월드컵 개최에 부정적이었던 일부의 시선조차 일시에 잠재우고
말았다. 내부적으로도 한국인의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확인하고 이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또 다른
성과였다. 단순히 한국인의 단합된 힘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에 그치지 않고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민족적인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월드컵 개최에 따른 보이지 않는 최대효과인
것이다.
이제 월드컵 축제도 끝났다. 그리고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감격과 흥분의 여운이 아직도 가슴 한쪽에서 강물처럼 흐르고 있지만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다. 오직 축구라는 격정적인 경기에 취해 만사를 잊는 행복한 시간이 영원히 계속될 리도 없다. 한국대표팀과
한국인이 만들어낸 가장 극적인 한 편의 장엄한 드라마는 벌써 저만치 역사의 시간 속으로 멀어져가고 있다. 아쉽지만 결코 되돌아보는
일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시간의 뒷모습에 손을 흔들어주어야 한다. 그게 시간에 저당 잡힌 인간의 삶의 태도이다.
|
|
한.일월드컵은 한국축구의 4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말해주듯이 한국이 세계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굳건한 반석이 되리라는 점은 의심할 수 없다. 축구를 좋아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월드컵
기간 동안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월드컵 경기를 본 사람이 연인원 400억 명에 달하리라는 수치가 가지는 의미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세계인구 태반이 시선을 월드컵이 열리는 한국 및 일본에 집중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홍보효과는 산술적인 계산을 훨씬 뛰어넘는 것일 수 있다. 거기에다가 전대미문의 세계4강에 올랐으니 그 시너지효과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
이번 한.일월드컵은 공동개최국인 한국에게는 단순히 축구잔치로 끝나고 말 일이 아니다. 월드컵을 계기로 그 동안 변방의 신흥공업국으로만
인식돼온 한국이 비록 축구라는 스포츠에 한정된 일이긴 해도 당당히 세계중심권으로 진입, 세계에 그 이미지를 새롭게 심어줄 수 있었다는
데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경제에서는 이미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는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에서는 아직도 제삼세계권에
머물고 있음을 자인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월드컵은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한국인의 잠재적인 에너지에 불을 붙이는
동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는 한국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 한국인의 잠재적인 에너지를 분출시킨 월드컵은 모든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세계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 셈이다.
그렇다면 월드컵의 성공이 한국의 미술분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자연스러운 예측이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의 문화예술 전반은
세계무대에 진출하는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 틀림없다. 한국을 모르던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 및 그 국민적인 단합된
힘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을 것이다. 이로써 어떤 형태의 예술활동이든지 일단 세계무대에 나가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열광적인 한국인의 거리응원에 따른 시각적인 이미지와 4강 진출이라는 예상치 못한 성적,
이 두 가지 효과로 인해 한국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
---------------------------------------------------------------------------------------------------------------------------
|
스포츠와 예술활동은 서로 분야가 다르므로 파급효과가 기대하는 만큼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월드컵 기간을 겨냥해 기획했던
미술전시회들이 평소에도 미치지 못하는 관람객으로 고전했던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스포츠와 미술의 부정적인 상관관계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미술도 즐긴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는 점이 판명된 셈이다. 그런데도 스포츠와 미술을
직접적으로 연계시켜 막연히 월드컵 특수를 기대한 일 자체가 현실적인 상황을 모르는 소치이다.
월드컵 개최 및 4강 진출은 한국축구의 위상뿐만 아니라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제고시키고 개선시키는데 결정적이었다. 월드컵대회가
올림픽대회보다도 더 많은 텔레비전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분야에서나 월드컵 특수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월드컵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미술활동은 되레 위축되었다. 월드컵이 열리면 한국을 찾는 축구팬들과 일반관광객이 늘어나고 그렇게 되면 전시회를
찾는 외국인의 발길도 증가하리라는 단순한 논리로 월드컵 특수를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고사하고라도
전체적인 관람객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적어도 월드컵으로 인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미술행사에 별다른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와 같은 결과에 대해 서둘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월드컵 개최국으로서의 시너지 효과가 미술활동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을지언정
한국과 한국국민의 존재를 세계가 새롭게 인식한 것만으로도 세계무대를 겨냥한 장기적인 미술활동에는 어떤 식으로든지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날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이러한 판단이 옳다고 가정했을 때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이전보다 한층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해외 미술활동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이번 한.일월드컵을 통해 한국에 대해 새롭고도 긍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었다면 한국작가들의 미술전에도 이전보다는 관심도가 높아지리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미술은 여러 형태로 서구미술계로 진출하고자 힘써왔다. 비엔날레를 비롯하여 상업적인 목적의 각종 아트페어 및 화랑,
그리고 미술관 기획전 등의 형태로 빈번하게 소개되어 왔다. 더불어 국내 유명 화랑은 파리에 합작형태의 상업화랑을 개설하기도 했으며,
해외 여러 곳에서 이민으로 기반을 잡은 교포들 일부가 현지에서 화랑을 경영하면서 한국미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
|
그런가 하면 미술전문지들은 서구미술관 및 화랑과 연계하여
민간차원의 교류전 등으로 한국미술을 소개하는 기회를 자주 만들었다. 또한 한국의 여러 미술단체들은 서구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비롯하여
중남미 동구권 그리고 기타 제삼세계권의 외국 미술단체들과 교류전을 통해 역시 한국미술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전시회는 '한국미술 알리기'라는 목적을 거두는데 어느 정도 효과적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전시회는 판매성과가 우선한다지만 그 역시 한국미술을 알리는 부수적인 효과를 거두기 마련이다.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든지
간에 한국작가들의 해외전시는 한국미술을 알리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일부 미술관계자 및 문화관계자들은 이처럼 어떤 기준
없이 자유롭고도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한국작가들의 해외전시회를 우려의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자칫하면 한국미술의 전반적인 수준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다시 말해 작품의 수준을 무시한 무분별한 전시회로 인해 한국미술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전적으로 옳다.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고 한국미술의 전반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경우라면 어떤 형태의 전시회일지라도
독자적인 판단기준이 마련되어 있어서 그 전시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한국미술에 대해 아무런 사전지식이나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수준 낮은 전시회를 보게 되면 그 첫인상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확실히 우려할만한 일이다.
문화수준이 그 나라 국력 및 국가이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개별적인 예술활동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 개인이거나 단체이거나 그리고 상업적인 목적이거나 교류목적이거나
간에 외국전시회에 관련해서는 어떤 형태의 사전심의나 규제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심의제도나 규제방법을 마련할 방도도
없다. 예술활동이란 어떤 경우에도 자유주의 원칙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형태의 미술전시회이든지 적어도 한국미술을
대표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를 물리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듯이 단지 전시회를 여는 것 자체만으로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될 일이다. 즉, 무분별한 경력 만들기 수단으로 해외전시회를 여는 것은 귀중한 외화의 낭비는 물론이려니와 한국미술 나아가
한국예술 전체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십상이다. |
---------------------------------------------------------------------------------------------------------------------------
따라서 해외전시회를 기획하는 단체나 개인 또는 화랑은 그게
어떤 성격의 전시회든 간에 일단 한국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이게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를 의식한다면 간단히 전시를 여는
것만으로 그 의미를 한정하는 식의 무책임한 전시회는 지양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주최측의 초청이 아닌 자비를 들여 참가하는 형태의
전시회일지라도 마찬가지다. 돈이 있다고 하여 일정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품을 들고 나가서는 좋은 평가도 받을 수 없으려니와
공연히 헛돈만 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빤하다. 이와 같은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외국 전시회를 강행하는 것은 참다운 예술가의 도리가
아니다.
과거 해외유학이나 해외여행이 쉽지 않은 시절에는 외국전시 경력 자체가 하나의 훈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어떤 형태로든지 해외전시회를 가질 수 있어 해외전의 프리미엄도 기대할 수 없다. 최근의 일부 해외전시회는 자기만족이거나 자기과시용으로
그치고 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해외전시회가 오히려 국내화단에 역효과를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다. 외국전시회를 갖고도 현지
전문가나 매스컴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는커녕 관심조차 끌지 못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금전적인 손실은 물론이요, 한국미술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
|
아무튼 이번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 및 4강 진출로 한국미술 또한 덩달아 세계인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 및 관심을 높여갈 수 있는 길이다. 문화예술은 보이지 않는 귀중한 자산이다. 오늘 날 세계는 경제전쟁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여기에서 첨병 역할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문화예술이다. 문화예술의 질적 수준이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강화시켜주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월드컵대회 기간 동안 보여준 '붉은 악마'가 만들어낸 신화적인 이미지는 새로운 패턴의 월드컵응원문화로
평가되고 있다. 붉은 악마의 이미지는 한국경제 및 수출경쟁력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파급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문화예술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신항섭 / 미술평론가
|
|